술은 왜 마셔가지고...
어제 운동경기를 하고 남은 것이라고 주는데 받아 놓고 보니 막걸리였다. 인원이 적은 협력업체로서는 금시초문인데, 그래도 남은 것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어려운 사람끼리 통하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그래서 막걸리를 건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술을 끊은 지 오래다. 벌써 22년 전 일이다. 따지고 보면 고주망태가 되도록 즐기던 술은 아니었으니 술을 끊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마음먹으면 되고, 술을 먹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그냥 술을 권하는 사람들이 사단이었다.
술을 끊었다고 아무리 거절을 하여도, 내 술 한 잔은 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데는 다른 이유도 없었다. 그냥 자기가 주는 술잔이니 받아 마시라는 것뿐이었다.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 애원조로 사양을 하여도 들이대는 데는 통하지 않았다. 특히나 손윗사람들은, 동양적인 사상과 위계질서를 중히 여기고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곤 하였다. 그러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포함하여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거쳐 갈 즈음에야 내가 술 끊은 것을 인정해 주었다. 내가 술을 끊는데 5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
술도 끊었고 의지가 약한 내가 오늘 술을 마셨다. 밥을 먹고 난 뒤에 밥그릇에 술을 따라 마셨다. 어제 가져온 막걸리가 틉틉하지 않고 청량음료처럼 해맑았다. 백년초처럼 분홍빛을 띤 것이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 고왔다. 술의 강도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나는 5.5%는 아마도 술 냄새가 풍기는 주스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전에 내가 마셔본 막걸리는 누런빛에 가까운 회색이었다. 큰 독에서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나무 되를 휘휘 저어 퍼주던 막걸리가 바로 그런 빛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진짜배기가 가라앉는다고 이리저리 두레박질을 하여 퍼주던 막걸리야말로 서민들의 간식이었다. 얼마나 좋으면 어른들이 즐겨 찾을까 심부름 길에 처음 마셔본 막걸리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한 모금 마셔서는 술맛을 알 수없고, 그렇다고 두 모금을 마셨다고 무슨 맛인지 알 수없기는 마찬가지였을텐데 홀짝홀짝 마셨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애가 술을 마시면 금방 아셨을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혹시 정말 모르셨을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체 하셨을까 알 수가 없다.
각 나라의 술은 주 생산품에 의해 결정되어왔다. 와인과 맥주, 위스키, 고량주 등이 그렇다. 여러 곡식이 나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쌀과 보리, 밀, 조, 수수, 감자, 메밀 등에 의해 다양한 술이 빚어졌고, 그 시기와 방법에 따라 한층 복잡하게 전해왔다. 어떤 술은 찹쌀과 멥쌀을 원료로 하고 여기에 들국화, 홍고추, 엿기름, 생강, 메주콩 등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술을 간식으로 여기는가 하면 식사 때에 곁들이기도 하고 약주라 불렀는가 보다.
커다란 대접으로 마신 것도 아니고, 취할 만큼 마신 것도 아니건만, 입안이 씁쓰름하고 속이 메스껍다. 머리가 띵한 것이 정신마저 알딸딸하다. 어쨌거나 생기기는 음료수처럼 생긴 것이 맛은 술맛이다. 나는 그 색깔에 속고 5.5%라는 단어에 속은 것이다. 술도 아닌 것이 독기를 품고 있어 사람을 취하게 한다. 비록 그것이 술이라 하여도 술술 넘어가야 한다는 명제에서는 마시지 말자고 해놓고 또 다시 속은 것이다. 막걸리도 분명 술은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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