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방 뭔 일을 한 겨?
세상에는 내가 하여야 할 일과 당신이 하여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이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그것을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 내 잘난 맛으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일들은 내가 당신의 할일까지도 하여야 하는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무슨 서류를 제출할 때 주민등록 등본의 제출이 그렇고 등기부 등본의 첨부가 그렇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법이 그렇다는 데는 또 할 말이 없지만 아예 그런 법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예가 우리 현실이다.
지인이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뒷좌석에 탄 손님이 마음에 걸렸단다. 그렇다고 승차거부를 할 수 없었던 터에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흘낏흘낏 거울을 쳐다보기는 하였지만 전방을 주시하고 운전을 하여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바라볼 수도 없었고, 그러다가 눈치라고 채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봐 그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단다. 얼마를 가슴 조리며 가다가 마침 검문소에 다다라서 지붕의 비상등을 켰단다. 뭔가 수상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켜는 비상등이니 실내에서는 알 수없고, 밖에서는 이 비상등을 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식적인 장치였다.
예상대로 검문소에서 검문이 시작되었다. 차를 세우더니 내부를 살펴보기도 하고 운전수의 상태도 살펴보았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쉬는 순간 경찰이 운전수에게 한마디 하더란다.
“아저씨. 왜 지붕에 불을 켜고 다니는 거요? 깜빡깜빡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어! 그래요? 알았어요. 불 끌게요.”
“다른 사람들 방해되게 불을 켜고 다니면 안돼요.”
‘아이구! 이것들 바보 아냐? 즈그들은 더 요란하게 번쩍번쩍하고 다니면서. 뒤 운전자는 얼마나 눈이 부시는지 도대체가 눈뜨고 운전을 못할 지경이더만.’
그런데 문제는 번쩍번쩍해서 눈이 부신 것이 아니라, 검문하고 검사해서 조사 좀 해 달라고 켠 불인데, 불을 끄라니 이게 웬 말인가. 20여년 택시 운전으로 보아온 눈치가 가방 속에는 분명히 커다란 흉기가 있음을 직감한 것이었단다. 무슨 범죄와 관련된 느낌을 받았기에 신고를 하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불을 끄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대놓고 범죄자 신고를 할 수도 없는 지경인데, 구조요청을 보고 오히려 나무래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딱 깨놓고 수상하다고 말한다고 위기를 벗어날 처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경찰이라면 위험한 물건이니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는 것에 그칠 것이 눈에 선하더란다. 그러면 뒤의 일은 물어 보나마나요, 남는 것은 택시 강도 사건이라는 뉴스 기사 하나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지하고 가던 지팡이가 부러져서 손을 다치게 되면 바로 아궁이에 넣어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그러나 때워 쓸 수가 있다거나 칭칭 동여매어 사용할 수만 있다면 좀 더 사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잘못 간수하고 내팽개쳐져서 비를 맞고 좀이 슬었다면 더는 그 기능을 회복할 수가 없다. 비록 멋있는 이름표를 달았을망정 주인을 짚어주지 못하면 그것은 지팡이가 아니다. 우리는 잘 가꾸어진 정원이 없을 때 작은 들꽃의 향기에 취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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