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사진 속의 웃는 사람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12. 1. 19:54
 

사진 속 웃는 사람들

사진 속의 사람들이 웃고 있다. 웃으라고 하니까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그냥 눈웃음만 짓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무표정에 그냥 먼 산만 바라다보기도 한다. 오늘의 주인공도 꽉 다문 이에 입술로만 웃고 있다. 이들은 대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이렇게 모두 모여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빨간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9명, 그 옆에는 사회복지사인 듯한 사람과 아마도 총 책임자인 듯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복장부터가 통일되어 표시가 난다. 거기다가 체격들도 풍성하여 모두가 한 체격씩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뭐가 그리 좋은지 호호껄껄 함박웃음이다. 그들은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른다거나, 대패로 손질하는 것은 못한다 하더라도 그냥 좋아서 웃기만 한다. 그들은 용접기로 쇠를 붙이지도 못하고, 보일러를 연결하는 배관을 할 줄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웃기만 한다. 아마도 수다를 떨며 주어진 일도 다하지 못할 정도로 웃어 제키다가 들킨듯하다.

사진 속의 그들은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가을날 짧은 해에 반시간이 아까울텐데도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 모여 폼을 잡고 있다. 지체 장애1급인 아낙을 가운데 세워놓고 모두가 웃고 있다. 혼자서는 서 있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보조기구를 양쪽에 끼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사진 속에 들어가 웃고 있다.

무상으로 집을 지어 준다는데 어찌 좋지 않을까마는 언제나 웃어 보았는지 남의 일처럼 전해져 온다. 생활이 고달프고 몸이 힘들어 언제 웃었는지도 모르는 아픈 기억일랑 지워버리고, 이제는 맘껏 웃으라고 하니 웃지 않을 수도 없다. ‘나는 사진 찍히기 싫은데... 좋으면 자기들이나 찍히지 왜 나까지 그러는가!’ 싶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속 사람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계속하여 웃고만 있다.

하긴 이렇게 해서 텔레비전 방송에 나가고, 라디오 방송에 나갈 것인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인가. 거기다가 잡지에도 나가고 신문에도 나갈 수 있다는데 이거야 말로 경사 아니겠는가.

사진 속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시골집의 부모님이 생각난다.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그럴수록 잘 자시고 더 많이 활동을 하여야 한다고 일러드렸었다.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이 그것도 모르실리 없지만 여전히 활동을 꺼려하신다. 그에 맞서 나도 웬만한 일은 도와드리지 않던 기억도 떠오른다. 들어도 못들은 척, 보아도 못본 척 하여 당신께서 직접 움직이시도록 한 것이다.

어쩌면 사진 속의 웃음도 이런 웃음이었을까.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우리 이웃에게 집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신문에 나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내가 더 이상 이웃 장애인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내가 편하기 위한 것보다, 그가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선하는 것이다. 당신 때문에 내가 유명하여져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당신을 도와주지 않아서 내가 편해진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아진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오늘도 웃고 있다. 어제도 그렇게 웃었고 어쩌면 내일도 계속하여 웃을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하는 것임을 알기에 소외된 이웃에게 집이 생기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