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러는 게 아닌데
사람이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닥치고 쉬운 일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때마다 흥분하고 분을 이기지 못한다면 아마도 병이 나서 곧 죽고 말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잊을 것은 잊고, 남의 말을 들을 때면 듣는 그런 면도 있어야 할 듯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한참 연배이신 분이 있다. 그분은 직장의 상사였던 분이고, 지금도 가끔씩 만나고 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냥 스스럼없이 연락을 하고, 반대로 특별한 일이 없어 좀 뜸했다 싶으면 또 전화를 해서 만나는 그런 사이다.
지금은 직장을 떠난 후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찾고 있는 것은 그의 성품이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분의 말씨는 항상 부드럽다. 그래서 뭔가 강력한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밀리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어떤 때는 약간의 차이로 기회를 놓치는 때도 있고, 이렇게 하지 말고 조금만 더 방향을 틀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분을 좋아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단 번에 밀어붙이고, 빠른 결단력으로 추진하는 것만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생활터전이 몸에 밴 탓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빠른 변화보다는 현재의 상태에서 성장해가는 발전을 더 선호하는 마음들이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급격한 진보나 혁신이 세상을 못살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급격한 진보나 완고한 보수 역시 어떤 필요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선택되어야 할 듯하다.
요사이도 그분은 당시의 간부급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초대받은 손님으로 등장하곤 하신다. 특히 애사나 경사가 있는 경우에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같이 하는 편이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간부들에 대한 주문과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것을 두고 혹자는 싫어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지금도 자기가 그럴 위치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서운해지기도 한다. 업무상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라면 그냥 듣고 거르면 될 터이고, 뭔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천하면 될 일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직장의 선임자로서 해주는 충고는 받아서 손해 볼 일은 없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취사하여 필요한 내용을 고르는 일만 남을 뿐이다.
오늘도 우리는 같이 만나서 상가에 들렀었다. 같이 근무하던 직장의 나이 어린 동료가 세상을 떠난 때문이었다. 현재는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때를 떠 올렸다. 남달리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였으며, 자신과 가족보다도 직장을 우선시하던 그를 모두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때 일로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다. 당시 총책임자로서 작업 여건을 좀더 개선하지 못하고, 좋은 처우를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고 하셨다. 이러저러한 부분에 대해 좀더 현대적으로, 좀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여 대처해주지 못한 것은 분명 당신의 잘못이라고 하셨다.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느 개인이 노력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당시의 산업사회 분위기가 그렇고, 우리나라 작업현장의 현실이 그랬기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그런 것들을 집행하는 입장에 있던 나로서는 오히려 앞서가는 대책으로,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잘못은 없다고 위로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어디 만족하고 떳떳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돌아서서 생각하면 항상 부족하고, 잘못해준 부분에 대한 후회가 있는 게 사람 아니던가.
직장을 떠난 지 벌써 4년이나 되는 시점에서, 15년 전의 과거를 두고 미련을 가지며 눈시울을 적시는 그분이었다. 나도 그분의 소주잔에 술을 따르면서 이제 그만 그런 일로 마음아파 하지 말라고 위로하였다. 당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였으면 되었고, 그렇지 못하였으면 그것에 대한 반성을 현재의 간부들에게 충고하라고 주문하였다. 내 주변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15년이 지났어도 돌이켜 반성하는 사람이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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