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과 상도의 차이
엊그제 전화가 왔었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사실 만난지 6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안부 전화가 왔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이 해가 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것도 있고 하여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걸어 보았다. 마침 점심시간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아 식사나 같이 하려던 참이었다.
그 친구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어 비교적 시간 내기가 수월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태라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만, 남의 사업장에 무작정 찾아 갈 수도 없는 것이니 그 빈도 조절도 잘 하여야 한다.
점심 식사야 글자 그대로 점심이니 거창하게 차려 먹을 것도 아니고, 서로가 형편을 잘 알기에 부담은 적었다. 우리는 고유의 전통 냄새가 풀풀나는 그런 음식을 먹었고, 밥이 모자라서 한 그릇을 더 시켜 사이좋게 나누기까지 하였다. 오늘 먹은 음식대금도 그 친구가 계산하였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연말 정산이라도 하려고 불렀건만 그것도 맘대로 못했다. 내 형편을 아니 행여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라고 막무가내였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이제는 미안한 마음도 들게 되었다.
식사 후에는 내가 알아 둔 땅을 둘러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것은 이래서 안 좋으니 자기가 소개시키는 곳을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자기가 소개하는 곳이 싫으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하였다. 물론 그 친구가 주장하는 것도 맞는 얘기지만, 어느 곳이라도 좋은 점은 좋다고 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긍정적인 면도 많은데 어찌하여 부정적으로만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나 요즘같은 부동산 경기에서 자기가 성사시키고 싶은 욕심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판단이야 매매 당사자가 하는 것이지만 소개자가 부추겨야 진행되는 것이 이치 아닌가.
요즘 부동산업계에서 특히나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친구는 벌써 몇 십 년을 해 온 일이지만 갈수록 어렵다고 했다.
내가 힘을 합쳐 부동산업을 할 것도 아닌데도 주택은 이래서 여기가 좋고, 상가는 저래서 저기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에 관한 한 혼자 결정하지 말고 반드시 자기와 상의를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고 많은 부동산업자가 널려 있는 판에 자기는 그간의 경험이 있고, 물건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부동산 업자에게도 상도라는 것이 있으니, 좋지 않은 물건을 좋다고 부추길 수는 없다고 하였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닌데 그냥 나몰라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었다. 상호간에 어느 물건에 관해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때 비로소 하자없는 거래가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본 땅을 말리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번의 거래야 자기가 성사시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물건을 산 사람은 평생을 두고 후회할 수도 있는 것이며 다른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친구가 있어서 좋다. 일이야 있을 수도 있고, 돈이야 없을 수도 있지만 사람을 잃고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가슴에 와 닿았다.
어느 것이든 자기가 생각하는 정도가 있으니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자세가 아름다운 것이리라. 지금까지의 장황한 설명이 얄팍한 상술이 아니라 듬직한 상도로 전해주었다는데 미치자 고맙게 여겨졌다. 내가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정도가 지켜지는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지 혼자 웃어 보았다. (박승규)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년 전의 일로 눈물짓는 사람 (0) | 2008.01.02 |
---|---|
그의 이름은 월촌양반이었다. (0) | 2007.12.29 |
우리 설은 어떤 날인가요 (0) | 2007.12.27 |
교회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0) | 2007.12.20 |
새하얀 눈이 내렸으면 (0) | 2007.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