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금마 도토성(金馬 都土城)

꿈꾸는 세상살이 2009. 5. 6. 15:36

금마 도토성(金馬 都土城)

 

구분 : 시도기념물 제70호 (익산시) (1984.09.20)

위치 : 전북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산14

규모 : 성곽 1식

 

금마 도토성은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의 해발 87m인 굿대숲 또는 깃대숲으로 불리는 구릉 위에 흙으로 쌓은 성으로 저토성(猪土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마에서 북쪽으로 약 700m쯤 떨어진 이 봉우리는 북쪽으로 미륵산, 서쪽으로 오금산, 동쪽으로 금마산이 둘러 있다. 이 토성은 능선으로 이어진 안부(鞍部)에 물이 없는 해자(垓子)인 공호(空壕)를 파서 절단하고, 독립된 산봉우리에 대머리와 같이 토루(土壘)와 토단(土段)을 쌓아올린 성이다. 성은 원형에 가까운 평면인데, 남쪽 성벽 중앙부는 돌출되어 있어 이 자리에는 우루(隅樓)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이곳에 묘를 써서 원형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금마 도토성의 특징 중 하나가 성벽 앞에 2m 내외의 회랑도(廻廊道)를 두었고, 그 회랑도 앞에 다시 성의 외곽을 따라 둘러쳐진 너비 9m, 깊이 2.4m의 인공연못 해자(垓子)를 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흙으로 회랑도 끝에 토루를 쌓아 방어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성벽은 산허리의 경사면을 파서 외루(外壘)를 쌓아 올리고, 내부에도 토루를 쌓은 흔적이 있다. 이 토성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익산지(益山誌)’에는 저토성(猪土城)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강후진(姜候晋)의 ‘와유기(臥遊記)’에 의하면 ‘서쪽의 두 토성중 하나를 이 금마도 토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마 오금산 토성과 굿대숲 토성의 두 토성을 기록할 때에 「두」를 「토」로 발음하여 ‘토’는 ‘도야지’를 의미하므로 저(猪)토성으로 기록하였는지도 모른다.

 

성안에서는 왕궁평 토성 내에서의 출토와 같이 상부대관(上部大官)명의 평기와쪽과, 미륵산성내 출토와 같은 금마저성(金馬渚城)명의 기와쪽이 출토되었다. 통일신라때의 유물로는 막새류와 명문와, 토기류, 중국청자 등이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미륵산성이나 왕궁평성 그리고 오금산성과 같은 때에 이룩되었던 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이곳에 서낭신과 주인(主人) 없는 신(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던 여단(檀)을 설치하였었는데, 성지(城地)는 이 고을 출신 소양곡이 말을 타던 자리로 전해지고 있다.

 

1991년 10월 18일부터 180일간 조사를 실시 한 바 성벽의 둘레는 369m, 문지는 1곳만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성곽의 너비는 추정되는 남문지역이나 동문지역 모두 430cm 정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높이는 3.5m 내외로 비교적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성곽의 북동부지역에서는 너비 560cm, 높이 3.9m로 커진다. 그것은 지형상 북동부의 능선이 취약하여 보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서문으로 추정되는 곳은 성곽의 너비가 410cm를 넘어 행동에 불편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