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망모당(望慕堂)

꿈꾸는 세상살이 2009. 5. 14. 16:18

망모당(望慕堂) 


구분 :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 (익산시)

위치 : 전북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356 (1979.12.27)

규모 : 1기


전북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장암마을에 있는 망모당은 선조(재위 1567∼1608) 때의 문인(文人)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耉)가 은거하던 곳의 후원에 세워진 누각이다. 선조 40년 1607년에 부친상을 당하고 집 뒤 언덕에 누각을 지었다. 그리고 동쪽에 떨어져 보이는 우산(紆山)에 모셔져 있는 조상들을 망모(望慕)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영구는 조선 명종 11년 1556년 9월 5일 출생하였다. 출생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성장한 곳은 이곳 광암리였다. 선조 10년 1577년 해평 윤씨와 결혼하였고, 선조 17년 1584년 서총대에서 실시한 정시(庭試)문과(文科)에 병과(丙科) 장원급제하였다. 선조 20년 1587년 11월 22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관직을 사임하고 여묘살이를 하던 중  1588년 7월 10일 어머니, 9월 6일에는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누당은 정(正) 사방(四方)의 9칸 집으로 오른쪽 1칸에 방을 만들었는데, 앞면 3칸, 옆면 3칸에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방과 마루는 문 4짝으로 벽면이 없이 완전히 통하게 만들었다.

앞면에 있는 4개의 주춧돌은 1m 정도의 누마루 형태의 높이로 마치 돌기둥과 같다. 기둥 위에 첨차를 놓아 굴도리 밑의 장혀를 받친 것이나, 난간두겁대의 받침기둥을 계자각 비슷하게 다듬은 것 등은 특색 있는 점이라 하겠다. 마루의 뒷면은 지반을 계단식으로 다져 얕게 세웠다.


‘망모당(望慕堂)’이라는 당액(堂額)은 중국의 주지번(朱之蕃)이 사신으로 왔다가 표옹 선생을 찾았으나 표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인지라, 묘소인 장암에 와서 참배한 후 표옹이 망모하던 누정의 당액을 보고 고쳐 써 준 것이라고 한다.
표옹과 주지번의 인연은 주지번이 서촉에서 온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통인으로 있을 때 표옹이 그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여 주었고, 주지번은 심기일전하여 다음에 합격하였다고 한다. 이후 주지번은 재상(宰相)에까지 올랐다.

망모당 부근에는 100여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어 장암마을이라 하였다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주위에는 맑고 깨끗한 왕궁천의 시냇물이 흐르며, 중국의 흰 연꽃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와 연꽃 연못을 만든 풍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당액인 ‘망모당(望慕堂)’과 ‘망모당입의(望慕堂立議)’, ‘망모당상량문(望慕堂上樑文)’,  ‘망모당중수기(望慕堂重修記)’ 등이 있고, 망모당의 아래 입구에는 송영구유허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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