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리고분(笠店里古墳)
구분 : 사적 제 347 호
위치 : 전북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 산 174 번지 일대
규모 ; 일식 (18,502m²)
입점리고분(笠店里古墳)은 1986년 2월 고등학생에 의하여 최초로 발견되어 1호분에서 8호분까지 확인되었다. 인근에 어래산성과 도청산성이 남북으로 가까운 거리에 마주하여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고대에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8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8기의 고분을 조사하였고, 1998년에는 사적 제 374호로 지정된 지역에 대한 정비를 위해 주변을 조사에서 다시 13기의 고분이 발견되어 총 21기가 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발굴조사에서 19기가 조사되었다. ]
이중 가장 양호한 상태로 발굴된 고분은 98-1호분으로 수혈식석곽묘로 분류된다. 할석을 다듬어 네 벽을 구축하였는데 석실은 길이 3.24m, 너비 1.44m, 높이 1.3m 내외이다.
입점리 고분에서는 금동제(金銅製) 관모(冠帽), 금제 신, 금제 장신구, 중국청자 등이 수습되어, 5세기 중엽경의 백제토착세력과 중앙세력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또 다른 유물로는 말재갈, 철제 발걸이, 토기, 청자항아리, 화살통 장식, 금귀걸이, 유리구슬 등이 나왔다.
관모의 내관은 가야와 신라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일본 구마모토현의 ‘애다후나야마’고분 출토품과 같은 국자형 뒷머리 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관모의 외관은 나뭇가지형 입식(立蝕)과 보요(步搖)가 장식되었다.
특히 금동제 관모가 발견된 1호 무덤은 널길과 널방을 갖춘 굴식 돌방무덤으로, 천장은 네 벽을 맞추어 쌓아 올리면서 마지막 넉 장의 뚜껑돌을 덮어 만든 소위 궁륭상 천장을 마련했다. 1호 무덤에서 나온 고깔 모양의 금동제 관모는 일본 웅본현 국수정에 보관돼 있는 선산고분 출토품과 유사하여, 당시 백제와 일본간의 문화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유물들은 5세기경 이 지역의 지배층과 관련되는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다.
입점리 고분 유물전시관은 326평 규모에 전시실, 수장고,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입점리고분과 웅포리고분에서 출토된 1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입점리 고분은 해발 90m~120m 사이에서 분포되었으며 유형은 구덩식돌곽무덤인 수혈식석곽묘가 11기, 앞트기식돌곽무덤인 횡구식석곽묘가 2기, 굴식돌방무덤인 횡혈식석실분이 7기, 독무덤인 옹관묘가 1기로 여러 유형의 고분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근의 웅포리 고분과 유사한데, 이들 고분간의 관계는 백제 지방묘제인 구덩식돌곽무덤이 중앙묘제인 굴식돌방무덤의 영향을 받아 앞트기식 돌곽무덤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이러한 횡혈식석실은 공주 송산리 5호분과 같은 것으로 금강 이남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된 예가 없었다.
예전의 익산은 건마국의 영토였으며 한때는 마한연맹의 맹주국이 되었음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튼실한 건마국이 4세기 초 백제에 병합됨으로 써 건마국의 세력가들은 백제의 중앙 귀족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익산지역이 백제의 중앙 세력권내로 흡수 편제되었다고 보여지므로 입점리 고분은 백제사뿐만 아니라 익산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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