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석탑내 발견 사리호(舍利壺)
2009년 1월 14일 발견된 금동제사리호는 처음 발견당시 분해를 하지 않고 외견만 확인한 후 정밀조사에 들어갔었다. 조사결과 금동제사리호는 내부에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처음의 금동제는 외호(外壺)로 나중의 금제는 내호(內壺)로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내호는 다시 유리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얇은 유리호(琉璃壺)였기 때문에 깨어지고 말았다. 종합해보면 사리를 보관하는 장치는 모두 3중구조로 되어있었다.
금동제사리외호(金銅製舍利外壺)
높이 13cm, 어께 폭 7.7cm의 금동제품(金銅製品)
금동제 사리외호는 넓은 입술위로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달린 뚜껑을 포함하며, 긴 목과 둥근 어깨를 지닌 동체(胴體)는 매우 힘차고 당당한 감을 준다. 뚜껑과 목, 그리고 저부에는 연꽃잎을 선각하였고, 동체는 인동당초와 연화당초문으로 선각하였으며, 여백에는 물고기 알의 형상인 어자문(魚子紋)을 새겨 넣었다.
목 부분의 융기선과 몸체 전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문된 2줄의 음각선은 돌림판(轆轤) 성형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동제사리외호는 동체가 상하로 분리되도록 제작되었는데, 아랫부분에는 ㄴ자 형으로 홈이 파이고 윗부분에는 리벳이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위쪽 몸체를 눌러서 홈에 맞추고 돌려 조립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높이 5.9cm, 어깨 폭2.6cm의 금제품(金製品)
금제내호는 금동제사리외호에 들어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금동제사리외호와 비슷한 형태이다. 외호에서는 뚜껑, 몸체 상부, 몸체 하부로 분리되었던 것이 내호에서는 몸체 상부와 몸체 하부로만 나누어져 있었다. 즉 몸체 상부는 뚜껑과 일체형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따라서 금판을 두드려서 만든 단조기법을 사용하였다. 몸체는 역시 외호와 같은 방식으로 하부에는 ㄴ자 모양의 홈을 파고, 상부에는 리벳으로 턱을 만들어 놓았다. 조립방식은 상부를 홈에 맞추어 누른 후 돌려서 조립하도록 하였다.
사용된 문양 역시 외호와 비슷한 연판문과 세잎넝쿨문, 어자문 등이 있었고, 전반적인 제작 구성이 외호와 유사하였다. 그러나 내호에서는 얇은 유리조각들과 사리가 발견됨으로써 내호의 안에 사리를 직접 보관하던 작은 유리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리제사리병(琉璃製舍利甁)
입술부직경 4mm, 입술부 유리 두께 약 0.3mm, 깨어진 유리조각 두께 약 0.1mm
금제사리내호의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유리제(琉璃製) 사리병임이 확인되었다. 그중에서 조금 두꺼운 입술부와 뚜껑외에는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파손되어있었다. 구연부의 크기로 보아 사리병에는 사리 1과(顆)가 봉안되었을 것으로 보이고, 꼭지가 달린 구형(球形)의 뚜껑은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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