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이팝나무 가로수

꿈꾸는 세상살이 2009. 9. 12. 06:50

이팝나무 가로수


길가에 줄지어 선 가로수가 꽃을 피웠다.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가의 이팝나무들이 5월의 계절을 알리고 있는 중이다. 언제 심었는지는 관심도 없어 알지 못하였으나 꽃이 피고 보니 거리가 한창 밝아진 듯하다. 하얀 꽃이 아침 태양을 받으니 눈이 부시기도 하며 풍성한 느낌도 준다. 가느다란 꽃잎이 서로 엉켜 굵게도 보이며, 차곡차곡 쌓인 두께도 제법 두툼해 보인다. 이것은 잘 차려진 제삿날의 고봉밥을 연상시키니 영락없는 쌀밥이다. 그러니 보릿고개에 이 꽃을 보면서 이팝나무라고 했다는 것은 꿈이 아닌 생시의 조화다. 그토록 먹고 싶은 쌀밥이 내 눈에 가득 들어오니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것 같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마치 방금 지은 햅쌀밥인양 보인다. 모든 것이 배고픈 시절에 느껴볼만한 대리만족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쌀밥을 먹었다. 그러나 일부러 하얀 쌀밥을 마다하며 잡곡을 섞어 먹는 것이 식습관으로 자리 잡은 현실이다. 이제는 그만큼 쌀을 원하지 않는 다는 반증이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이팝나무는 여전히 탐스럽다. 혹시나 싶어 만지면 손에 척척 달라붙을 것만 같은 쌀밥이다. 책속에서는 볼에 묻은 쌀밥을 떼어먹으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내 손에 묻은 이팝나무 꽃은 입에 대고 떼어먹어야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팝나무 밑을 지나다니는 아이들은 이팝이 쌀밥의 다른 이름임을 알기는 하는지, 보릿고개에는 쌀밥 먹기가 굶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하다.

탐스런 이팝나무 밑에 서서 꽃을 보며 입을 벌려본다. 그러나 바라던 쌀밥은 떨어지지 않고, 그 대신 한 웅큼의 향기가 입안에 들어오더니 핏줄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마당에 걸어놓은 외딴 솥에 불을 지폈다. 얼마 후에는 피시식 하며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뽀글뽀글 거품이 생기는 게 영락없는 게거품이다. 몇 번을 그러더니 쪼르르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을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이 먹고 살아야하니 식물의 아픔까지 돌볼 여유가 없다. 애써 태연한 척 외면하지만 여기서 쪼르르 저기서 쪼르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보니 더 이상 힘겨루기를 계속하는 것도 미안스럽다. 그렇다고 단숨에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라 주변을 정리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세상의 이치가 음과 양이 있듯이 모든 일에 이기고 짐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물러남도 순전히 너를 위한 배려일 뿐이다. 혹시나 하며 다시 돌아와 내가 부족하지 않다는 듯 불씨를 살린다. 식어가던 솥은 다시 뜨거워지고 마지막 남은 물기마저 모두 말려버린다. 이제는 쏟아낼 더 이상의 눈물도 없다. 내가 이겼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면서 하품을 한다. 입 안 가득 들어온 향기는 핏줄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밥향기다. 새하얀 쌀밥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