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25. 정월 대보름에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기세배

꿈꾸는 세상살이 2010. 3. 17. 13:30

익산 기세배(益山 旗歲拜)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644번지에서 전하는 ‘익산 기세배’ 놀이는 전북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로 2000년 11월 24일 시도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대동단결을 주제로 하는 민속전통놀이로 맥을 이어오던 기세배가 강점기 1936년 강제 해산되었으며,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촌로들로부터 고증을 통하여 1976년 재현하게 되었다.

 

기세배는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놀이로서, 옛 마한과 백제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월 대보름의 민속놀이로 금마, 왕궁, 함열, 삼기와 인근의 옥구, 김제에서도 행해져 왔던 놀이다. 함열에서는 ‘농기뺏기’라는 형태로 전해져 왔으나 이어지지 않으며, 금마에서는 12개 마을이 한자리에 모여 농사의 신에게 예를 올려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의 협동심과 연대감을 조성시키는 목적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농기세배’라도 불리는 기세배의 정확한 근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옛날 마한시대의 소도(蘇塗, 솟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농기는 이동식 솟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소도행사는 농신(農神)을 상징하는 신기(神旗)를 중심으로 모여 은혜에 감사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며, 이를 계기로 주민간의 단합과 협동심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상원달 세배절에 일상적으로 어우러져 지내는 여러 마을의 농기(農旗)들이 한곳에 모여 상호간 세배를 교환하고, 각 마을은 정월 열나흘 날 밤이 되면 마을 당산에 농기를 세워놓고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농경시대에 만들어진 풍습이라고 볼 수 있다.

금마 기세배의 경우는 미리 서열이 정해진 12개 마을이 참가하였다. 이들은 ‘선상(先上)마을’이라 불리는 맏형 마을의 소룡기(小龍旗)가, 정해진 형제의 서열에 따라 11개의 아우 마을들을 다니면서 각 마을의 농기를 선상마을로 인도한다. 맏형마을 광장에 모인 농기들은 서열대로 맏형마을의 농기에 대하여 정중하게 세배를 한다. 서로 세배를 교환하고 나면 즐거운 ‘농악놀이’와 ‘기놀이’로서 형제의 우의를 다지는 의례가 이어진다. 즉 기세배는 여러 마을의 주민들이 협동하여 상호협력과 친목을 결의하는 숭농행사(崇農行事)의 놀이인 것이다.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마을의 단독행사로 베풀어지는데 비해, 이 기세배(旗歲拜)놀이는 여러 마을이 합동으로 지역사회의 단합을 이끌어낸다는 관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놀이의 구성 내용은 기제사, 영행 인솔, 당산굿, 마당놀이, 기세배, 기놀이, 군무 등으로 되어 있다. 참여인원은 약간씩 다른 주장이 있으나 좌상(座上), 공원(公員), 총각좌상, 총각머슴, 기받이가 각 각 1명씩이다. 또 사령(司令) 2명, 7∼8세 선남선녀의 꽃나비 2명, 꽃받이 2명, 보조기받이 2명, 농악대 8명(쇠 2, 장구 2, 징 1, 북 1, 소고 2)등으로 각 마을마다 21명으로 되어있다. 여기에 선생마을은 선생마을기의 인원 외에 소룡기받이 1명, 소룡기보조받이 2명이 추가된다.

그러나 현재 금마 기세배의 재현에서는 좌상 1, 공원 1, 총각좌상 1, 조수머슴 1, 베루 1, 기받이 2, 기받이 보조 4, 사령 2, 꽃나부 어깨받이 2, 무동 2, 상쇠잡이2, 징잡이 1, 장고잡이 1, 북잡이 1, 소고잡이 3인으로 한 마을에 25명이 동원된다. 그리고 마을단위로는 상대, 구정, 누동, 교동, 옥동, 신촌 등 6개 마을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도 행사에 필요한 소품으로는 농기 1, 소동기 1, 영기 2, 중의적삼, 짚신, 버선가발, 소동한복, 전립, 전복, 고깔, 도포, 갓, 담뱃대, 띠, 농악 일조 등이다.

금마 기세배놀이의 진풀이는 입장굿, 인사굿, 마을별 원진, 달아치기 을자진, 기배열안 바탕, 장사진, 각진, 나눔진, 쌍줄백이, 기제사굿, 기세배, 합류굿, 멍석말이진, 쌍발울진, 개인놀이, 기놀이, 인사굿, 퇴장굿을 포함하여 18가지의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12개 마을에서 참가하던 기세배가 축소되어 이제는 6개 마을에서 참여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분은 기놀이부문과 농악놀이부문으로 나누는데, 농악놀이는 여느 농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놀이부문은 전국에서도 유일한 민속놀이로 전하고 있다.

1995년부터는 '익산기세배 보존회'를 설립하여 이 놀이의 계승발전에 노력하고 있는데, 주요 실적은 다음과 같다.

1976년 제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1984년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1987년 올림픽 성화 숙박지 문화축제 시연

1988년 올림픽 성화 안치 문화축제 시연

1995년 '익산기세배 보존회' 설립

2000년 11월 24일 시도 민속자료 제2호에서 시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종목변경

2004년 동고도리 1038-4번지에 ‘익산기세배 전수회관’을 착공하여 2006년 02월 11일에 개관하였다.

 

익산기세배와 비슷한 문화재로는 1989.12.29 충남 시도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고 충남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산789에 근거지를 둔 공주탄천장승제(公州灘川長丞祭)가 있다. 이 역시 공동체의식의 함양을 주목적으로 한다.

탄천장승제는 송학리에서 약 400년 전부터 내려오는 민속신앙으로 음력 정월 초이레에 농악을 울리면서 시작되고, 남녀의 장승을 합궁시킴으로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토속적인 생산의식이다. 동쪽은 신랑, 서쪽은 신부로 나뉘어 대보름날 마을의 중앙에서 기세배를 시작한다. 동쪽마을이 서쪽마을 맞아들이는 형식을 취하며, 각자 농기를 둘러싸고 놀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다리에서 농악에 맞춰 신부가 4배, 신랑이 2배하면서 장승의 혼례식을 거행한 후 신랑신부를 묶어 합궁시킨다.

합궁이 끝나고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면 주민들은 질병과 액운을 쫓는 방포 3발을 쏘고, 동쪽마을에서는 씨름, 서쪽마을에서는 널을 뛰어 장원을 뽑고, 다시 모여 밤새도록 논다. 이 제(祭)는 198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고 예능보유자는 박영혁이다.

‘익산기세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크고 많은 깃발인데, 이들을 통한 대동단결(大同團結)이 주목적이다. 또는 합심(合心)과 협동(協同)이라 말할 수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런 풍습을 통하여 새로운 시작에 동참하는 권유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단합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설날을 지내고 나면 바로 이어지는 문화가 지신밟기였다. 정월 초사흘부터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방문하여 부엌의 조왕굿, 장독대의 당산굿, 안방의 성주굿, 우물의 샘굿 등을 펼치며 덕담(德談)으로 무병평안을 빌고 잔치를 벌였다.

또 정월 대보름이 되면 기세배를 포함하여 농악을 즐기고 줄다리기를 하였다. 농악은 마을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모으고 모두가 공동체로서 화합하자는 요구이기도 하다. 또한 줄다리기는 동편이나 서편, 윗마을과 아랫마을, 혹은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갈라 시합을 하였는데, 여자쪽 즉 서편이 이기는 것을 원했다. 그것은 음지를 말하며 평소 묵묵히 일하던 부덕(婦德)을 받들어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기원이었다.

이와 비슷한 놀이로 차전놀이와 고싸움, 동채싸움, 나무쇠싸움, 농기싸움, 횃불싸움, 쇠머리대기 등이 있다. 이들도 대부분 남녀를 상징하는 동서마을의 놀이로 여자쪽이 이기도록 정해져 있으나, 정작 싸움이 시작되면 이기는 데 목적을 두기도 하였다.

보통 한 마을의 줄다리기를 위하여 줄을 만드는 경우 1주일이 소요된다면, 차전놀이나 쇠머리대기 등은 한 달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당일의 시합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도 아주 중요한 마을의 행사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서로 돕고 화합하는 대동(大同)을 바라던 선조들의 지혜였다.

그리고 정작 농사철이 되면 단오제를 통하여 단결하고, 조금 뜸해진 여름에는 칠석놀이, 추수가 끝나 자칫 해이해지기 쉬운 가을에는 강강술래를 통하여 추스렸다고 볼 수 있다.

익산기세배는 6개 마을이 모이는 행사에 깃발 40여 개가 필요하다. 전임 대통령취임때 시연한 기세배에서는 48개의 깃발이 출연하였었다. 크고 작은 기가 모이면 장관을 이룬다. 커다란 깃발은 기의 무게가 5kg이나 되며 대의 무게만 하여도 6kg이상이 된다. 따라서 큰 기의 전체무게는 15kg, 중간 기가 13kg, 작은 기가 11kg 이상이다. 그러나 기의 무게도 무게려니와 잡고 흔들다보면 바람을 맞아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에 많은 경험과 대단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풍속이다.

익산시세배보존회는 현재 장고담당인 소월례회장을 비롯하여 142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물론 이 회원이 모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행사에 대략 100여 명씩 동원되는 거대 민속놀이다. 그것도 원래는 12개 마을에서 경합을 벌이던 기세배가 현재는 6개 마을로 축소되어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인원이다. 각 회원들은 각자의 회비를 내서 기타비용에 충당하고, 정부로부터 년중 4회의 정기행사에 대한 실행비용을 지원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연로하신 회원 외에 젊은이들의 참여가 전무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으로 익산기세배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할 인적자원이나 물적자원이 부족한 상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익산기세배가 전라북도 시도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으나, 당시에도 예능보유자는 지정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한 점은 기세배보존회의 역할이 부족한 탓이다. 자칫 맥이 끊기면 무형문화재지정에서 해지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민속놀이를 작은 민간단체인 보존회에서 혼자 책임지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제에 후계자를 양성하여 화합의 장인 민속놀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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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투데이 2010.03.17  게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