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면 호산리 산9번지 일대에 석성이 있는데, 그 일원을 1999년 4월 23일 시도기념물 제99호로 지정하였다. 이 지역은 여산송씨 시조 진사공대종중의 소유로 인근에 비하여 산세가 험한 편이다.
천호산성은 여산면 옛 여산 석회석광산의 주봉인 천호산(天壺山)에 있는 성으로 규모나 축성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기록은 없다. 주봉 500m와 북동면으로 뻗은 지맥 중 482m의 부봉을 둘러싼 석성이다.
전하는 기록을 살펴보면 일제가 조사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전주군계 작은 산의 정상에 있으며, 석성으로서 주위 약 6정 전부가 붕괴되었으며 속칭 농성(農城)이라고 칭한다.’라고 적혀있다. 일설에는 천호산성을 대성(臺城)이라고도 부른다. 또 문화유적총람의 익산조에는 ‘천호산성은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산4번지 천호산 주봉의 북동쪽으로 자연석 및 깬 돌을 이용하여 둥글게 쌓았는데, 지금은 석축이 무너져 성지(城地)만 확인될 뿐으로 전체 길이는 약4km정도이다. 후백제와 고려군의 격전지로 전해오고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산구지(礪山舊誌)에 ‘천호산성은 부(府)의 동쪽 십리에 있는데, 성 아래 용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호산은 익산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대체로 경사가 심해 능선부외에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여기에 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의 외벽은 비교적 납작한 사각형의 석재로 내탁(內托)과 협축(夾築)을 하였다. 남북의 장축은 260m, 둘레는 669m, 평지의 최대 폭은 약70m나 되어 비교적 큰 성에 속한다.
성의 북쪽 벽은 잘 다듬어진 돌로 쌓았는데 현재 성의 높이가 2m, 성곽의 폭은 4m이며, 성의 하부가 조금 넓고 상부로 갈수록 조금씩 줄어드는 들여쌓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성의 대부분이 무너졌으나 흔적은 발견할 수가 있고, 산의 정상에는 7.5m의 봉수대로 추정되는 유적이 남아있다.
주변에서 백제토기와 수막새 기와편이 수습되어 백제시대 축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축조방법에 대한 사료가치가 크다. 발견유물로 보아 백제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인 삼국의 말기에 축조되었다고 여겨지며, 고려와 후백제가 격렬한 전투를 하였다는 기록에 의해 후삼국시대에 이를 때까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의 내부에는 군용 헬기장이 만들어지면서 많은 지형훼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문지나 건물지를 나타내는 유물을 발견하지 못해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가 없다.
천호산은 천호산성 외에도 천호성지와 천호동굴을 가지고 있는 산으로, 경사가 가팔라서 등산객도 많지 않은 산이다. 그렇다고 인적이 드문 잊혀진 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천호산의 동쪽으로 있는 천호성지는 천주교 박해지인 숲정이성지와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며, 산자락에 순교자묘역과 기념관, 그리고 피정의 집 등을 갖추고 있다. 몇 번이나 찾았던 천호성지는 글자 그대로 세상의 시끄러움을 피한 조용한 곳이었다.
천호동굴은 호남지역에서는 보기드문 석회암동굴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석회동굴에 비하여 2차 생성물이 덜 발달되었으며, 석회동굴의 붕괴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석회석 광산은 지금 생산을 하지 않아 광석을 고르던 장비들도 사라진지 오래다. 작업용 차량들이 수없이 다니던 비탈길은 찢기고 헤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한편 천호산의 북쪽 봉우리에 성태봉이 있다. 이 봉우리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서 충남 연무읍 소룡리에 이어지는 곳인데,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도계지점에서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면 나온다.
성태봉은 해발 450m에 달하며 정상에는 봉화를 전송하던 봉화대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게다가 봉우리 주변을 둘러 싼 산성의 흔적도 보인다. 사람들은 이 산성이 백제의 방어기지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통일신라 때에 후백제의 아성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이 산성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기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007년 충남 논산시에서는 이곳 일대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지정하였고, 시민들이 이에 반대를 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등산가들이 이를 보았고, 사학자들이 발견하였을 것이지만, 성태봉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발굴을 하지 못하여 불거진 결과다.
주봉인 천호산성이 후백제와 고구려의 전쟁을 위한 성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유추된다면, 이곳 성태봉산성도 후백제의 산성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현재 보존된 성태봉산성의 상태라든지 인근의 천호산성의 존재라든지 하는 점들이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이곳은 천호산성에 비해 더 많은 구간에서 완벽한 성벽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전라북도에서 조사한 ‘고대산성조사보고서’에서 성태봉산성은 백제시대의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성태봉산성이 천호산성의 남아있는 성벽보다 더 뚜렷하고 잘 보존되어있지만, 이곳은 우리 관할이 아니다.
천호산의 성태봉은 용화산에 있는 성태봉과 비교하여 동명이지(同名異地)임으로 주의하여야 한다. 참고로 용화산의 성태봉은 용화산성의 일부로, 선인봉과 성태봉에서 산성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용화산의 나머지 봉우리에서는 그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천호산 줄기의 성태봉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가 만난 지점으로, 골프장이야 논산시 관할지역에 건설하겠지만 산성은 어느 한 도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 더 많은 다른 유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논산시민들의 여론에 따라 산성에 대한 훼손을 거론한 지방의 작은 언론기관에서는 더 이상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적으로나 재력으로나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역사 발굴이기에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천호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곳이 있겠지만, 천일사 윗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천일사는 천호동굴을 찾아가는 도중, 마을 정자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곳은 여산 송씨의 제각이 있는 곳으로, 산세가 좋고 물도 좋은 계곡을 따라가면 된다. 도중에 300년 이상된 소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예전에 신작리 곰솔이 고사한 이후 이곳의 소나무를 대용으로 심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익산의 문화재와 관련된 문수사와 백운사가 있고, 그 주변에 백련암과 천일사가 모여있는 신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문수사 뒷길로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지만 이 길은 거리가 만만치 않다. 천일사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으니, 조금 가파르기는 하더라도 천일사코스가 가장 바람직하다. 게다가 천일사에서 따라나서는 안내자가 있으니 마음놓고 갈 수도 있다.
내가 처음 방문하였을 적에는 풀이 우거지고 나무의 녹음이 푸르러서 길을 찾지 못하였었는데, 두 번째는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쉽게 발견하였다. 그러는 동안 멀리서부터 아는 체를 하던 흰둥이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면 녀석도 걸음을 멈춰 나를 바라보았다. 야단을 치고 따라오지 못하게 하면 고개를 땅에 대고 넙죽 엎드린 채 여유도 부렸다. 그런 우리들의 경계심은 산의 정상까지 이어졌다. 폼으로 보아하니 분명 한두 번 오른 솜씨가 아닌 듯하였다.
산의 정상에 올라 헬기장에 닿으니, 그제사 경계심이 늦추어졌나보다.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날뛰는 흰둥이는 역시 천방지축 그대로였다.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는지, 제 주인이나 되는 양 바지 가랑이사이로 숨바꼭질도 청한다.
산밑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사찰의 그림자는 사람이 몹시 그리웠나 보다. 흰둥이는 성벽 밑을 조사할 때나 비탈을 내려갈 때에도 나를 따랐다. 심지어 꼬불꼬불 산 아래를 내려갈 때에는, 언덕에 서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언제 다시 천일사에 찾아갈 약속도 하지 못하는 뜨내기인데, 반갑게 길을 안내하던 동행이 고마웠던 천호산이었다.
2010.11.24 익산투데이 게재분
'내 것들 > 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54. 함라산 숭림사의 대웅전인 보광전 (0) | 2010.11.28 |
---|---|
55. 문간채로 담장을 이룬 함라 김안균가옥 (0) | 2010.11.28 |
43. 미륵산마루의 심곡사대웅전(大雄殿)과 목조삼존불좌상(木造三尊佛坐像) (0) | 2010.08.12 |
42. 독립운동가 김병수의 익산중앙동 구삼산의원(中央洞 舊三山醫院) (0) | 2010.08.09 |
41. 서동과 선화의 발상지 익산미륵사지(益山彌勒寺址) (0) | 2010.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