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보광전은 웅포면 송천리 5번지의 숭림사에 있는 불전(佛殿) 보광전을 말한다. 이 유물은 불교의 불전에 속하며 1985년1월8일 보물 제825호로 지정되었다. 숭림사(崇林寺)는 함라산 아래의 숲속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다. 이곳에서 ‘지정 5년 을유(至正五年乙酉)’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고려충목왕 1년 1345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숭림사라는 명칭은 중국의 달마대사가 숭산소림사(崇山少林寺)에 앉아 9년간 도를 닦았다는 옛 이야기를 기리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을 모신 보광전(普光殿)은 17세기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되지만 몇 차례 중수(重修)되었다. 2단으로 된 높은 자연석 석축기단위에 세워졌고,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팔작형(八作形)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인데, 건물 옆면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다.
건물안쪽은 보 끝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고, 기둥 윗부분에 설치된 건축부재들은 각각 연꽃, 용의 몸, 용의 앞발이 여의주를 쥐고 있는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숭림사는 익산군지에 ‘보광전이 고려 충목왕 원년 을유년 1345년에 건축하였다.’는 기록을 필두로, 보광전의 명문기와에 ‘지정(至正) 5년 을유년 1345년 4월에 행여선사(行如禪師)가 조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는 등 변천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1882년 조희호의 ‘숭림사 법당중수기(重修記)’에 ‘조선순조(純祖) 19년 1819년 조희호(趙曦鎬)의 조부가 중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 경내의 영원전(靈源殿)과 나한전(羅漢殿)은 주지 황성열(黃成烈)이 1923년 이웃 성불암(成佛庵)에서 옮겨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요사채인 정혜원(定惠院)은 조선 인조 22년 1645년에 건립되었으나 소실되어 재건하였으며, 우화루(雨花樓)는 보광전을 중수하여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보광전의 법당 안에 설치된 불상의 복장기문(腹藏記文)에는 만력(萬曆) 41년 1613년에 시작하여 다음해에 완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명문와에는 ‘숭정원년(崇禎元年)’인 인조 6년 1629년 기록과 ‘강희21년(康熙二十一年)’ 즉 숙종 8년 1682년이라고 쓰여 있어 아마도 임진란이전에 소실되고 다시지은 것으로 보인다.
보광전(寶光殿) 건물은 광서8년(光緖八年) 조선 고종19년 1882년에 조희호(趙犧鎬)가 쓴 숭림사법당중수기(崇林寺法堂重修記)를 바탕으로, 가경24년(嘉慶二十四年) 조선순조 19년 1819년에 다시 중수(重修)된 것으로 확인된다. 현판에는 ‘광서원년(光緖元年)’ 1875년이라는 명문이 적혀있다. 보광전은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을 모셨는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여래불(阿彌陀如來佛), 왼쪽에는 관음보살불(觀音菩薩佛)을 모시고 있다. 불상의 후면에는 1912년 정연(定淵)과 만덕(萬德)스님이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畵)가 있다. 그 밖에도 1952년에 봉안된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함께 걸려 있다.
불단(佛壇)의 천정에는 섬세한 용조각이 있는 닷집(寶蓋)을 설치하여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식 건물이며, 공포는 삼출목구조로 기둥머리는 물론 기둥머리 사이에도 한 개씩의 공간포를 배치하였다.
처마의 전면은 부연(浮蓮)을 겹처마로 달았으며, 후면은 홑처마로 되어있다. 전체적으로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법을 조화롭게 보여준 안정된 건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법식과 기법이 특징인 조선후기 건축물로 당대의 건축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받는다.
경내에 있는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紋香爐)’는 시도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어있다. 또 숭림사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시도유형문화재 제188호, 영원전 지장보살좌상 및 권속은 시도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되어있다.
숭림사의 보광전이 보물로 지정된 것은 오래된 사찰의 주전(主殿)이며, 형태나 제작기법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때문이다. 국내에는 이처럼 오래된 사찰의 주전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많이 있다. 가까이에는 김제 금산사의 주전은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주요 사찰의 주전이나 부전(副殿) 그리고 부속 도서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하고 있다.
익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에 함라산이 포함되어있다. 그런데 이 산에 천년고찰 숭림사가 있어 더욱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 사찰까지 들어가는 길은 큰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진입로 끝에는 작은 다리가 있으니 세심교(洗心橋)다. 개천이 흐르지만 물은 많지 않은 편이다. 산이 높지 않은데다가 산세마저 험하지 않고 숲이 우거지지도 않았으니 물이 없는 교량이다. 어쩌다 한번 많은 비가 쏟아질 때만 제 역할을 할뿐이다. 그러기에 한여름 더위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에게 발을 적셔줄 물조차 대주지 못하는 말뿐인 계곡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숭림사를 즐겨 찾는다. 봄이면 봄대로 벚꽃을 감상하러 오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더위를 식혀주는 계곡으로 찾아오며, 가을에는 등산과 함께 함라산의 단풍을 구경하러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겨울이오면 그리 혹독하지 않은 지역적 특성상 부담없이 찾아오는 등산길의 산사가 되어준다.
익산에서 벚꽃을 감상하려면 어디를 가야할까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우선 숭림사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숭림사의 경내보다는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의 진입로에 많은 벚꽃이 피어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름드리나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지 않은 크기와 적지 않은 숫자는 하늘을 가려 터널을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여름이 오면 달랑 돗자리 하나 들고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오수에 빠졌다가 배가 고프다고 생각되면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그것도 귀찮은 시간이라면 줄지어 기다리는 식당가를 찾아도 된다. 정말 그나마 움직이기 싫어진다면 슬그머니 일어나 절에 들르는 것은 어떨까. 혹시 말을 잘하면 절밥을 먹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더 좋은 것은 시내와 멀지않은 곳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며, 언제든지 시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사찰이다.
최근 숭림사에서 함라삼부잣집과 웅포입점리고분을 잇는 둘레길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곰개나루에서 삼부잣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명상길, 병풍길, 양반길, 건강길 등으로 나눴다. 바쁜 일상에서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옛 정취도 느끼고 산책도 하면서 명상과 건강을 챙기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다.
숭림산의 주변은 산행과 사찰탐방이 끝나면 식사를 할 만한 장소가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도로의 분기점에는 황토우영농조합에서 직영하는 전문점이 있다. 황토물을 먹이고 황토밭에서 자란 풀로 키운 소를 특화시킨 특산품이다. 이것은 익산시가 선정한 향토식품에 속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근의 농장에서 사육한 닭이나 오리를 이용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조용한 시골의 깨끗한 저수지에서 자란 민물고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이런 푸짐한 음식점들이 고즈넉한 시골 산사의 입구에 있다는 것은 어딘지 부조화로 여겨지지만, 지금까지 서로 다투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010.11.10 익산투데이 게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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