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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장상의 종자는 따로 있는가

꿈꾸는 세상살이 2011. 12. 10. 19:49

왕후장상의 종자는 따로 있는가.

 

예전의 왕권정치시대에 많이 회자되던 구절로,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왕조가 아니므로 이런 문구가 해당사항에 들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행하는 방식은 최고지도자를 선출제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나는 위 물음의 정답을 ‘그렇다’로 하고 싶다.

정말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는가? 왕조에서 왕의 후계자는 왕족이어야 했다. 그래서 왕후장상의 종자는 따로 있었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왕조가 몰락하여 다툼이 생기면 이때는 다른 지도자가 새로운 왕조로 등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후로 계속되는 왕권의 종자는 씨가 따로 있게 된다. 그러면 왕조가 바뀌는 순간의 왕은 처음부터 왕후장상의 종자였던가. 그것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태평시대에 계속 이어지는 왕조는 씨가 따로 있고, 새로운 왕조가 등극하면 새로운 왕이 될 종자가 왕이 된 것이니 어차피 왕후장상의 종자는 따로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것은 음양오행설에 의해 타고난 천기를 인정하는 범위에서 말이다.

요즘의 정치를 보면 전자의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었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풀어보면 현재의 정치인들 그 중에서도 집권 여당의 지도층이나 강한 세력을 규합한 무리의 수장들 중에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에서 얻는 답이다. 결국은 나 아니면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으니 알아서 물러서라는 얘기다.

최근 치러진 10∙26재보선에서 안철수씨가 표면에 나타났었다. 이 사람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 안철수연구소 의장직을 맡고 있다. 그가 세간에 유명해진 것은 안철수연구소에서 컴퓨터바이러스용 백신을 만들어 무료로 보급하면서부터다. 그를 만난 적도 본 적도 없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치고 안철수백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이 정치에 나설 수 있다고 하는 말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평소 그의 행적을 보아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자세로 부패한 정치권을 정리해주기를 바랬었다.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를 두고 그는 순수한 학자로 남아있어야지 왜 정치권에 나오느냐고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심지어 학자는 연구나 할 것이지 알지도 못하는 정치를 한다고 깝죽대느냐고 한다. 말하자면 장치는 내가 하고 대통령도 내가 되어야 하니, 경쟁자 학자는 학교에서 연구나 하고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게 바로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다는 말로 들렸다.

백번양보를 하여 현 집권당의 지도급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왕후장상의 종자라면, 안철수는 지도자를 꿈꾸지 말고 연구나 하라는 말과 앞뒤가 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안철수씨가 연구나 할 형편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현 지도자들은 정치에 나서기 전 어떤 일을 하였던가. 기껏해야 공무원으로 검사 혹은 판사를 하였고, 아니면 자영업으로 변호사를 하였다거나 건설업으로 돈 좀 번 뒤 그것도 권력이라고 국회의원에 덤볐던 것을 잊었단 말인가. 그것도 안 해본 사람은 아버지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다가 좋은 기회를 만나 국회의원이 된 후 큰 소리 좀 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비겁하게 남의 덕분으로 불로소득 하여 얻는 것은 옳은 지도자가 아니다. 마을 이장이 선거에 나서서 지도자가 되고, 경험을 쌓고 덕망을 갖추면 그보다 높은 지도자를 꿈꾸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것이다.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다면 선왕으로부터 승계를 하든지, 새로운 어떤 도전자가 우월한 능력으로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왕후장상의 씨로 태어난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일이면서 결혼기념일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천운이 있다고 하였다. 정말 천운이 있어서 그랬다면 왕후장상의 종자는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부패하고 지저분한 정권을 갈아엎을 새로운 지도자가 나오는 것도 천운에 들어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연구나 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이나 책임지라는 말을 하는 지도자는 정말 국가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내가 하면 왕후장상의 종자라서 되고, 남이 하면 어줍잖은 것이 깝죽댄다고 하는 말은 아전인수의 표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