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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텔레비전은 안녕하신가!

꿈꾸는 세상살이 2012. 11. 14. 13:53

댁의 텔레비전은 안녕하신가!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성폭행 특히 소아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도 종종 발생한다. 거기에 더하여 불특정 다수 즉 지나는 행인에 대한 조건 없는 범죄도 잊을만하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저러다가 만약 내가 당한다면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선량한 국민의 한 사람인 나도 무차별적인 범죄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언어적으로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로 드러나고 왕따 혹은 집단 왕따라는 현상으로, 최근에는 SNS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일들은 모두 계획적이고 계산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온 국민이 치를 떨 때면 어김없이 정부가 나서서 국민을 감싸준다. 이번에는 무슨무슨 특별단속반을 만들어 국민을 편하게 해 줄 테니 정부를 믿고 참으라는 얘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폭전담반, 주취폭력전담반, 성폭력전담반, 갈취폭력전담반, 학교폭력전담반 등에서 보아 그렇다. 오히려 무슨 전담반에 들지 못하명 제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많은 가외 조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특별기구는 특별조치에 버금가는 일로 매우 중요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끝은 항상 흐지부지하였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런 특별 전담반을 반복하여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한 번 만든 전담반이 일정한 격식을 갖추고 해지되지 않는 이상은 계속 유효할 텐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는 스스로의 증거를 내는 꼴이다.


매일같이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아! 뉴스란 저런 것이구나! 항상 불안하고 어두운 것이 우리의 일상이구나 하는 부정적인 세뇌교육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공의 적에게는 관대함이 우선하면 안 된다. 한 사람의 권리보다 여러 사람의 권리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목자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는 것에 비유하여, 여러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죄인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피해를 본 사람은 일단 피해를 본 것이고, 죄인인줄 알았다고 하여 일부러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길 잃은 양이 길을 잃지 않은 많은 양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을 때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저 만큼 늑대가 도사리고 있을 때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간다고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내 팽개쳐도 좋다는 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건의 사법처리가 대체로 미약한 것에 할 말들이 많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 때도 이와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피해를 당했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면 그 때도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제는 미국에서 성폭행을 가한 20대 남성에게 99년형을 선고한 예가 나왔다. 우리에게는 왜 이런 판결이 없는 것일까? 아니 왜 이런 판결을 못 하는 것일까?


우리 집의 텔레비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진 자들의 횡포도 보도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 텔레비전을 나쁜 텔레비전이라고 말한다. 좀 더 좋은 이야기, 좀 더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는 텔레비전이기 때문이다. 마치 일제가 그랬듯이 국민들을 당신이 무식하고 못나서 그러니 그냥 시키는 데로만 하라는 교육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텔레비전은 좋은 텔레비전인가 알고 싶다. 안녕하신지를 물을 정도로 존경받는 텔레비전인가 알고 싶다. 권력자들과 지도자들에게는 자신이 잘못을 하였을 경우에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도할 때 아주 좋은 텔레비전일 것이다. 내가 항상 밥 먹듯이 하는 일이기에, 사건 자체가 바로 나의 일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좋은 보도를 하는 좋은 텔레비전일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의 최종적인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다고 믿는다. 상층의 지도자들이 좀 더 솔선수범하면서 민생을 챙겨야 하는데, 자신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매 주마다 온 교인이 합심하여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정치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 집의 텔레비전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왕 바꿀 거면 현재보다는 좀 더 좋은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으로 해야겠다. 상층부 지도자들의 일상이 텔레비전에서 나오지 않는 좀 더 차원 높은 텔레비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