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고장에도 시름을 잊고 걸을만한 가로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길이 꼭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되며, 내소사의 전나무 길처럼 웅장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혼자 걸을 때 내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나무로도 족할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 뽐내지 않으며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 군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궁지에 몰리면 나의 몸을 받아 숨길 수 있고, 내가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하면 나무가 알아들어 외롭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 고장에도 가을을 알리는 단풍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길은 백담사에 가는 길처럼 아름다운 단풍이 아니어도 좋고, 내장사입구처럼 진하게 물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곳에 노란 잎과 푸른 잎, 그리고 붉은 잎이 어우러져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면 그뿐이다. 굳이 글로벌 관광객이 몰려오지 않아도 되며 국내 유명 관광지에 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느끼는 가을의 정취와 한 여름을 이겨낸 인고의 세월을 즐길 수 있다면 족한 것이다.
내 고장에도 맑은 물이 흘러가는 개울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개울은 선운사에 가는 길처럼 길옆에 바로 붙어있지 않아도 된, 높은 산과 계곡이 만들어내는 개울이 아니어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얼룩배기 황소가 없어도 피라미가 헤엄치며 잠자리가 떼로 몰려온다면 제격일 것이다. 거기에는 콘크리트 수중보나 인공어도를 만드는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가 서운하다면 메기가 집을 지은 물웅덩이로도 충분하다.
내 고장에도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문학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곳은 꼭 유명작가가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되며, 작품의 주요 소재나 유명한 특산물이 없어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범부가 예술을 이야기하며 우리네 삶을 사랑하면 그만일 것이다. 따지자면 노벨문학상이나 유명한 문학상을 타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생활예술이면 그만이다.
내 고장에도 특색있는 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밤에 온통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이나 선운사 뒤뜰의 석산단지만한 규모가 아니어도 된다. 그냥 계절에 따라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고,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공원의 목적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안정을 주는 것이니 세계 최대 혹은 국내 최대로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내가 피곤하고 지쳤을 때 찾아가서 쉴 수 있으면 만족이다.
내 고장에도 시원한 나무그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곳은 꼭 300년 된 천연기념물 숲이 아니어도 된다. 한 여름에 태양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거기서 지친 몸에 오수를 더하면 좋을 것이다. 공자의 은행나무가 아니어도 좋고, 낙락장송 기개가 없어도 좋다. 굳이 유실수가 아니어도 좋고 놓고 보는 관상용이 아니어도 좋다. 그렇다면 그 흔한 느티나무나 아카시아 나무로도 충분하다.
내 고장에도 자그마한 언덕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몽마르트 언덕이나 골고다 언덕처럼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어도 된다.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연을 날리며 장보러 가신 어머니를 마중하는 곳이면 족할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낭만이 없어도 된다. 자그마한 들풀과 이름 모를 잡초가 있으면 충분하다. 그들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신의 필요성으로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다.
내 고장에도 높은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구름위로 솟아 사람들을 발아래에 놓고 보는 그런 건물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 마을의 이쪽저쪽을 돌아보고 순박한 삶을 보듬어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거기는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시기와 질투가 숨어 지내는 어두운 곳이 아니며, 사악한 무리들의 테러대상도 없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꿈이요 행동하는 구심점이 되어 줄 것이다.
내 고장에도 작은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가면 훌륭하신 분들의 위인전도 있고, 삶의 지침이 되는 고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아버지 어머니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면 더욱 자주 들르게 될 것이다. 예술적인 누드화가 없더라도, 실제와 같은 사실파 그림이 없어도 된다. 그래서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영농일지와 작업일지를 추가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내 고장에도 문화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가면 그 유명한 훌라춤이나 발리댄스를 만날 수 있으며, 요즘 국위를 선양하는 케이팝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문화 우리 마을의 문화를 이어가는 정말 멋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 타인의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것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는 지난 우리가 있고, 현재의 우리를 바탕으로 미래의 우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고장에도 지역 신문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신문을 통하여 지구촌 저편의 소식과 함께 각종 사건사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형편이나 시시콜콜한 우리의 근황만으로도 우리는 한 방향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되어 갈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이 필요하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먼 곳의 남의 일을 알고 비평을 하는 것만큼이나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어리석음도 없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의 일,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고장에도 선술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얘기하며 좋아하는 술을 골라 마시는 것도 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취하지 않고 몸을 가눌 정도만 마시게 되는 선술집이야 말로 바람직한 술 문화의 온상이라 할 것이다. 술은 마시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안주는 먹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먹으면 되는 것이니 다 먹어 없애려 하지 말고, 나에게 도움이 될 만큼으로 절제하여야 한다.
내 고장에도 눈이 왔으면 좋겠다. 저 높은 산 알프스나 히말라야처럼 만년설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며, 눈이 그리워질 때쯤에 나의 발목까지 쌓이는 눈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 눈은 울퉁불퉁 굴곡진 세상을 평온하게 덮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함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빙하가 녹아 날리는 눈이나 썰매를 타자고 인공으로 만들어 붓는 눈은 해당사항이 없다. 아름다운 눈은 나의 치부를 덮어 대신 반성해주는 따뜻한 눈이기 때문이다.
내 고장에도 신발을 벗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외형적인 신발과 편리성을 강조하는 포장도로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측면도 많이 준다. 그래서 건강을 위하는 지압은 물론 자연과 하나 되는 조건이야말로 진짜 신토불이로 살아가게 하는 매체로 훌륭하다. 단단한 시멘트에 날카로운 돌을 박은 지압길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길, 풀과 벌레가 같이 사는 길, 그곳에서 내가 자연과 하는 되는 그런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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