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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야 되는 세상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15. 22:02

줄을 서야 되는 세상

우리는 항상 줄을 서며 살고 있다. 특히 선거철에는 어느 줄을 설 것인가를 고심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다른 줄로 갈아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줄이 나쁜 줄인지 좋은 줄인지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눈앞에 놓인 것을 선택하는 우리네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들은 위를 바라며 줄을 서는 습관에 젖어있는 안 좋은 버릇이 있나보다. 그래서 줄은 제대로 서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막바지인 2010동계올림픽에도 줄은 있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줄을 서서 기다리더니 결승점에 도달할 때에도 순위를 정해서 들어왔다. 코치나 감독들이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몸짓을 한다 해도, 선 밖에 나란히 서 있었을 뿐 경기장 안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했다. 결국 운동선수들도 줄을 서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줄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마을 신협의 이사장 선거가 있었다. 12명씩 입장하여 세 줄로 나누어 서 있었는데, 한참 후에는 내 앞에 두 사람이 더 들어있었다. 알고 보니 살며시 입장한 그들이 새치기를 한 것이었다. 그러자 30년 전의 어느 날, 배식대 앞의 줄이 생각났다.

훈련이 아무리 고되며 비록 몸은 흙밭에 뒹굴어도 밥은 배불리 먹어야 된다고 지어진 유격대식당이었다. 1년에 한 번 생존을 시험하는 연습이었고, 만약이라는 단어를 빙자하여 극한상황을 연출하는 훈련이었다. 그래서 계급장도 떼어내고 백의종군의 자세로, 체력을 단련하며 극기를 다지는 유격대였다.

장교는 국제신사라고, 만능이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따지고 보면 상급자도 실수투성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장교는 항상 겸손해야 하며, 계속 배워하는 지휘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목숨을 담보로 전투를 이끌어야 하는 군대에서만은 명령과 기강이 서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장교와 사병을 구분하는 단 한 가지 이유다.

그런 장교들이 서있는 줄에 사병 한 명이 새치기하여 끼어들었다. 계급장이 없으니 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만약 계급장을 달았었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병들은 늦게 출발하여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였지만, 뛰어온 사병들은 그만 장교의 후미와 겹치게 된 것이었다.

그날 장교들은 사병을 나무라지 않았다. 장교들도 힘이 드는데, 그 지겹다는 유격을 받느라고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격려 차원에서였다. 또 하나, 어차피 계급장을 떼었는데 구분하면 더 속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장교가 줄을 제대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었다.

장교의 눈에는 사병이 보이는데, 사병의 눈에는 장교가 안보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계급장이 없으니 이틈에 맞먹어보자고 했다는 것이 아니라, 계급장이 없으니 끼어들면 네가 어쩔거냐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병의 눈에 장교들의 줄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하고 반듯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신사가 교과서대로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

오늘도 줄을 서야 되는 시점에서, 내가 어떤 줄을 섰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줄이 나를 명예와 권력으로 안내하는 지름길인지, 아니면 남의 눈에 내가 국제 신사로 비쳐질 줄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줄에 서 있고 한솥밥을 먹더라도, 멋있는 사람의 줄에 서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비록 권력이나 명예는 못 가졌더라도, 내가 서야할 줄을 인식하고 제대로 선다면 그것도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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