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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과 타협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15. 21:59

협상과 타협

협상과 타협이라는 말은 사실상 서로 같은 말이다. 일반적인 해석으로 보면 어떤 사안에 대하여 의견이 다른 경우, 그들이 중재 역할을 통하여 이견차를 좁혀나가는 방식 혹은 그런 상황을 의미한다. 어쨌든 서로가 의견을 토론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협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떤 일방이 주장하는 측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그런 것이 그러한데, 예를 들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어느 한 쪽이 뒤로 물러서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서로의 의견 교환을 통하여 이해가 되면 한 쪽이 양보를 하게 된다. 이때 내가 병이 급하니 먼저 건너가자고 한다거나, 몸이 불편하니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기에 무리라는 판단이 있는 경우 등에는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양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협상과 타협이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에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도로에서 마주오던 차량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버티는 일이 있었다. 한적한 이면도로에서 생긴 일이었지만 양쪽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을 정도로 통행이 번잡한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한쪽방향으로만 주차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편하자고 양쪽에 그것도 드문드문 이빨 빠진 형태로 주차한 것이 문제였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서로 마주보며 달려오던 차량이 전후좌우 상황을 감지하기는 하였지만, 둘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진입하여 중간에서 맞닥트리고 말았다. 두 차량은 교차하기 쉬운 지점에서 상대방이 멈춰서 기다려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달려온 것이다. 순간, 서로는 앞에 선 차량도 문제지만 뒤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르게 판단하고 있었다. 후진하여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버텨서 상대방이 후진하게 만들 것인가 전광석화처럼 빠른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그런데 둘은 그대로 멈춰 서서 상대방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물러서줄 것을 기다리는 시간은 겨우 10초가 지났을까 하는 동안, 둘에게는 마치 30분이 지나는 것처럼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이때의 10초는 그냥 열 번을 똑딱거리면 되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이제 차문을 열고 나서게 되면 큰 소리를 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지막에는 주먹다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기다리는 고도의 심리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강심장인 운전자는 차량의 엔진을 끄면서 상대방에게 무언의 시위를 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의도다. 이쯤 되면 마음이 유순한 사람은 대체로 후진하여 길을 터주고 협상이 이루어진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이지만, 혹은 어느 쪽의 일방적인 요구였지만 그래도 둘의 협상은 이루어지고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 보통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마주오던 차량이 서서 대치한 상황은 며칠 전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며, 상대방이 시동을 끄고 나를 바라보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사태를 직시하여 해결하려는 협상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한 일종의 분노였을 것이다. 나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로 시동을 끄고서는 자동차 열쇠마저 뽑았다. 그리고 상대방 운전자가 아닌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중에 또 10여 초가 흘렀다. 그러면서도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사태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 사이 각자의 차량 뒤로 또 다른 차량들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얼마가 지나자 따라오고 있던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어서 길을 트고 바쁜 갈 길을 가자는 신호가 틀림없다. 내 차 뒤로 두 대가 밀렸고, 상대방의 차 뒤로 한 대가 붙었다. 겉보기 숫자로는 3:2가 되었으니 내가 이긴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단순한 차량의 수로 인한 승리가 아니라, 사실은 내 차량이 후진하려면 아주 멀리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답으로 나와 있었다. 반면에 상대방의 차량 뒤에 붙은 한 대의 차량은 후진을 하더라도 겨우 차량 한 대의 길이만큼만 후진하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양 쪽으로 주차된 차량 사이를 비집고 한참이나 먼 길을 진입하여 온 상태이고, 상대방은 이제 막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벗어나 좁은 길에 진입하려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응급차나 소방차가 아닌 경우 조금 기다려야 할 차량은 확연히 구별된다. 좁은 길에 누가 먼저 들어왔느냐 혹은 뒤로 후진하여야 할 거리가 누가 짧으냐에 따라 협상의 단초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좁을 길을 들어서 가고 있을 때에 반대편에서 상대방이 진입하여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먼저 진입한 차량을 위하여 자신의 속도를 늦추면서 기다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는 허겁지겁 불안하게 달려오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들이닥치는 것이 무척이나 교통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순간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한참이 지나자 사태를 파악하였는지 아니면 통 크게 양보하였는지 상대방 운전자는 차량의 시동을 걸더니 후진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입은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들어보나마나 내용은 뻔하다. 나도 그런 상황까지 만들고 싶지 않아 후진을 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저런 이유로 후진을 해주었다면 상대방은 옳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여 항상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의 교통 체증을 유발하더라도 하나의 사건을 만들기로 다짐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내 마음을 알아줄지는 모른다. 아니, 그때의 행동을 미루어본다면 아마도 재수 없었다고만 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잘못 배운 운전 습관이 비록 상대방 운전자와 같은 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은 분명한 일이다.

차량이 지나치는 순간 나도 창문을 열고‘그래서 어쩌라고! 별 미친놈도 다 있네.’라며 한 마디 해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내 행동이 틀렸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협상이며, 정당한 요구에 의한 합당한 타협이 필요한 것이니 자신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조금은 급하더라도 조금은 아쉽더라도 남의 처지를 생각해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제3자가 보는 객관적 판단에서 말이다.

20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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