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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 먹었우?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4. 20:58

몇 살 먹었우?

오늘은 저녁밥을 먹기 전에 병원에 들렀다. 마침 일이 일찍 끝난 관계로 저녁 시간에 밥을 떠 먹여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찾은 것이다. 반드시 내가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병인이 무척 바쁘실 거라는 생각에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따지고 보면 바로 내 어머니요 우리 어머니신데, 남의 손발을 빌려 간병을 하고 있으니 그분들 보기에 그것도 참 못할 일이었다. 그러기에 할 수만 있다면 식사 시간에 맞추어 일손을 덜어 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인지상정이랄까. 어찌 생각하면 내가 하기 어렵고 힘들 것 같아서 생겨난 제도이니 당연하다 하겠으나, 그것도 사람 사는 이치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병실의 비어있던 침대에 낯선 환자가 들어왔다. 어떤 때는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던 환자가 돌아오신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분이었다. 입원환자를 알려주는 문패에는 아직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다. 어르신은 혈색도 좋고 풍채가 좋아 전혀 환자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다른 병원에서 이송되었다는 것과, 걸음걸이가 둔한 것이 어딘지 이상이 있음을 짐작케 할뿐이었다. 첫날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부축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북새통을 일으켰다.

한동안 시끌벅적하던 소란이 끝나자 모두들 돌아가고 병실은 이내 평상으로 돌아왔다. 좁은 병실은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야말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하기만 하다. 앞에서는 작은 소리로 코를 골며 주무시는가 하면, 옆에서는 여기저기 쑤셔대는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 병실이란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던가. 누군가 병문안이라도 올적에는 좁은 병실이 터져나갔다. 어쩌다 그랬느냐니,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느니,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웃음소리가 소란스러워 짜증이 나는 곳이었다. 큰맘 먹고 와서 한 번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이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미워지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모두가 돌아간 병실은 너무 조용하여 마치 낮 세상과 밤 세상이 다른 곳 같았다. 혹시 이승과 저승 사이가 이런 관계는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몇 살요! 젊은 양반?’ 오늘 오신 분이 말문을 열었다. 누워만 계시니 답답하셨나보다. 심란하던 나는 썩 내키지 않아 콧등으로 대답하였다.

‘몇이나 되어 보입니까?’ ‘우리 아들은 마흔 다섯여. 은행 댕기는디 바빠서 못 오고 내일 온다고 혔어. 오늘 온 게는 딸허고 며느리여.’ ‘그럼요. 바쁘면 못 오지요.’ ‘근디, 몇 살 먹었쇼? 우리 아들보다 젊어 보이는디.’ ‘그보다는 많이 더 먹었어요.’ ‘응! 그려? 그렁게! 우리 아들보다 훨씬 어려보이더라.’

나는 하나하나 따져 대답할 기분이 아니어서 그냥 허투로 듣고 있었다. ‘예.’ ‘우리 막내는 서른 여덜인디. 댁이 막내요?’

글쎄 막내하고 서른여덟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인간관계는 참으로 복잡하다고 느꼈다. 한참동안, 그러나 간간이 대화가 이어지던 병실의 문이 살며시 열리면서 팽팽하던 긴장이 풀어졌다. 마침 간병인이라도 왔을 거라고 기대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문간에는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병실을 한바퀴 둘러보더니 문 앞 첫머리에 놓인 침대로 가서 잠자는 환자를 들여다보았다.

‘엄마, 나 왔어요.’ ‘응? 너 왔냐? 춥지?’ ‘아니! 잘 있었어요?’ ‘응.’

새로운 방문자의 얘기를 듣느라고 잠시나마 세상 흘러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도 잠깐뿐, 아니나 다를까 아까 하다 멈춘 것이 마냥 서운하였던지 예의 그 어르신이 말문을 이었다.

‘근디, 저 사람허고 형제간이요?’ ‘아녜요.’ ‘그려요? 근디 엄마라고 허네?’

병실은 침대마다 사람이 찼고, 거기에 문병 온 가족까지 더 했으니 마치 바람이 가득 찬 고무풍선 같았다.

‘근디, 젊은 양반은 몇 살요?’ ‘몇 살 안 돼요.’ ‘어쩐지 젊어 뵈더라. 우리 아들은 마흔 다섯인디. 바쁜가벼, 온다고 혔는디 아직 안 왔어.’

밤이 늦도록 초점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어 말대답을 하지만 어떤 때는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대답을 아예 안 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분의 눈망울을 바라보니 그만두자고 거역할 수도 없다. 내 할일도 바쁜데 내가 왜 이런 대답을 해야 하는지 하다가도, 아들이 바빠서 못 온다는데 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얄미운 부아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즈그들은 즈 쓸 돈 번다고 바빠서 못 찾아보는 환자를, 생면부지인 내가, 일없는 내가 횡설수설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조화 속이로구나.’

심심하다는 어르신과 피곤하다는 젊은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병실 바닥에는 한바탕 휘몰고 지나간 긴장감이 터질 듯한 내 가슴을 채우고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온 방안을 뒤덮더니 문틈사이로 새어나갔다. 그림자 하나도 들어오지 못하게 꼭꼭 닫아놓은 문이건만 소리없는 아우성이 주인을 찾아 나선 것이리라. 온다고 해놓고는 바빠서 못 오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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