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지 않는 사랑과 믿음 (누가복음 6장 37절~38절)
우리는 항상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질투를 한다. 그중에서도 비판과 헤아림을 따지는 현실이다. 모든 것이 나 기준이며 내 저울을 활용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의 허물이 없으며 계산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라며 떳떳한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은 그대로 사랑으로 넘쳐난다. 사람에 대해서도 계산하지 않고 앞뒤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 대한 평가를 따지고 계산하지 않으신다.
사랑은 절대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셨을 때 나와 예수님을 바꾸면 이익인가를 따져보셨을까? 무조건 사랑하여 독생자를 내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무리 속에 놓아두시고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셨다. 계산적으로 고생하지 않고 많은 무리 양을 단속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을까?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나눠달라고 아우성을 쳐댈 때 아버지가 선선히 줄 수 있을까? 묻지 않아도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아들을 사랑하여 나누었다. 그러나 탕진하고 돌아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기쁨으로 맞이하며 새 옷과 기름진 음식을 주었다. 계산하지 않고 베풀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 계산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헤아려 적당한 베푸는 주시는 분이시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렸더니 광주리에 차고 넘치도록 베푸셨다. 예수님은 계산하지 않고 기도하신다. 계산하는 사랑이 있었다면 자기를 배반한 가룟유다를 마지막 만찬 때까지 그대로 두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사람의 기준으로 계산하시지 않은 사랑을 보이셨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보응이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을 받을 계산으로 따지면 믿음이 오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계산하고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믿는 것이 믿음이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함이 아니함이로다...’ 다시 말해 믿음으로 믿음이 있을 뿐이며 계산으로 믿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논리를 말하면 믿을 수 없다. 벌써 죽으신 예수님이 어떻게 지금의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논리가 되겠는가? 믿음은 그냥 단순하게 믿는 것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일 때만 믿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것이며 믿음도 계산하지 않는 일이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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