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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의 운명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09:49

뻐꾸기의 운명

 

뻐꾸기는 뻐꾹 뻐꾹하며 운다.

아니다. 뻐꾸기 뻐꾸기하며 운다고도 한다. 그런가? 삐비삐비 삐비삐비하고 울기도 한다. 그것도 아니다. 비비비비 비비비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는 것이 아니라며 웃는단다. 암컷과 수컷의 소리가 다른데 그런 사실도 모른다.

요즘 우는 5월이 다 가도록 듣지 못했다. 웬일인지 궁금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직 전세방을 구하지 못했나?

뻐꾸기는 탁란생 파렴치로 통하니, 대놓고 울지도 못하는 신세를 알았나보다. 사람이 새의 생리를 어찌 알겠느냐마는 얼핏 이해는 한다. 부모의 유전을 닮았으니 너와 나의 모습은 같은 운명이라고 여긴다.

뻐꾸기는 알을 한 배에 4개 까지 낳는데, 남의 둥지에 낳고 거저 얻어 키우는 유능한 권력자다. 그러나 한 둥지에 한 개의 알을 숨겨 낳는다. 둥지 주인이 눈치를 채서 내다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섞여 위장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뻐꾸기의 지혜다. 나머지는 다른 둥지에 분산시킨다. 생존전략이다.

위탁하는 뻐꾸기 알은 뱁새와 개개비 등 작은 무리에게 해당한다. 뻐꾸기가 볼 때 작은 새가 만만해서 선택했다. 이것은 미래전략으로 보인다. 작은 새들도 동종의 공동작전으로 물리쳐 방어한다. 이것은 뻐꾸기의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한다.

뻐꾸기는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다가 꾀를 냈다. 그래서 유전자를 만들어 냈다. 알을 낳기 24시간 전부터 알 속에서 성장하는 보존전략을 택했다. 부화하면 기다렸다가 늦은 알을 밀어내고 독차지한다. 이것이 영구적 지혜로 전한다.

뱁새는 이것을 눈치 채려고 여기저기 들락날락 종종거리다 보니, 버릇이 굳어져서 다리가 짧고 총총 뛰는 뱁새가 되었다. 그 대신 제 자식이 아니면 곧 알아챈다. 이것은 감시조를 동원하는 레이더망이다. 그래서 뻐꾸기는 둥지 알의 색을 확인하고 탁란을 감행한다. 이것은 대안지략이다.

늦게 깨달은 뱁새는 이러다가 먹인 뻐꾸기에게 발등을 찍힐까 우려되면 바로 둥지를 떠난다. 내 자식 대신 남의 자식 길러 후손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전면 철수하는 전술이다. 그래서 갈수록 크기가 작게 낳았다. 작아도 강한 종을 보존하는 방안으로 위기 후에 기회를 포착했다. 소 잃고 담장 고치는 경험이다.

전장에서 살아가는 뱁새와 개개비가 불쌍하다. 제비는 왜 사람 처마에 둥지를 틀었을까? 이것은 멀리서 달려온 제비가 피곤하다며, 빼앗고 빼앗기지 않는 싸움을 회피하는 최선책이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참교육이다.

탁란이 뻐꾸기뿐이겠나? 뻐꾸기 말벌, 뻐꾸기 메기, 두견이, 돌고기 등 아주 많다. 그런데도 왜 뻐꾸기만 지목할까? 그것은 사람과 같이 사는 새라서, 둥지 주인에게 미안하다 울어대니까 편리 위주로 낙인을 찍었다. 마귀사냥을 떠나는 사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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