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난자
“예예. 여기 사고 났는데요. 빨리 좀 와 주십시오.”
“예. 거기는 어딥니까?”
“예. 여기는요. 공단 제2사거리 있죠? 거기서 우회전해서 내려오면 세계주식회사 나오죠?”
“예.”
“그러면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세요. 그다음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세요. 그럼 동양주식회사가 나옵니다. 그 아래 사거리입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승용차와 오토바이의 사고인데요. 오토바이가 많이 부서지고 오토바이 운전자가 많이 다쳤어요. 죽지는 않았는데 많이 다쳤나봐요.”
“그럼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세요. 금방 가겠습니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사고가 나자마자 승용차 운전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사고내용과 누구의 잘 잘못까지도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야.”
“응. 자기야? 어디야?”
“응. 지금 가는 중이야. 그런데 가다가 친구를 만나서 늦을 것 같애.”
“친구?”
“응”.
“친구 누구?”
“친구 얘기하면 자기 다 알아?, 오래된 친군데 좀 늦을 것 같애”.
“응. 알았어. 술은 먹지마. 음주운전이니까.”
“그럼 당연하지.”
“그래 알았어.”
“응 끊어.”
사고가 났어도 한국은 할말을 다했다.
사고현장에 자신과 다친 오토바이 운전자 밖에는 아무도 없고, 지금은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과연 전화가 채 끝남과 동시에 비켜비켜 하면서 구급차가 도착했다.
요즈음은 세상이 좋아진 덕분에 부상자들도 쉽게 구조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평소 소방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 갈 때면 불을 끄러 가야하니까 빨리 빨리 길을 비켜달라고 ‘비켜비켜’하는 소리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병원응급차는 환자를 싣고 가는데 곧 위험한 지경이니 주변의 사람들이 ‘애고애고’한다고 농담도 했었다. 그러나 에스맨에게는 뭐라고 비교할 만할 내용도 없었다. 단지 ‘이놈들아 내가 가니까 조심해라. 누구든 걸리면 본전도 못건진다’정도였었다. 사실 요즘 인기가 있는 에스맨들은 강도나 도둑을 잡는 것보다, 내가 주변에 있으니 아예 그런 마음을 갖지 말라는 예방차원의 활동이 더욱 효과적이고 근본취지에도 맞다고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도 이번 사고에서 수사대보다도 먼저 소방서에 연락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보험회사에 막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소방관은 오자마자 큰소리를 쳤다.
“여보세요, 길을 그렇게 알려주면 어떡해요.”
“왜요?”
“공단 제1사거리에서 죽 내려오라고 하면 될 것을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을 하면 됩니까?”
“지금 내말에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설명 잘해주고 잘 찾아오면 되는 것이지”
“하긴, 뭐 내용전달만 잘 되면 되지. 환자는 어딨어요?”
“저기요.”
큰 사거리에는 쓰러져 있는 환자와 승용차 운전자 둘 뿐인데다가, 밝은 대낮에 굳이 환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럼 환자 보호자는요.”
“여보세요, 내가 환자 보호자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참, 그렇지. 그냥 물어본 것 가지고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래요? 그런데 어떻하나, 우리가 병원에 후송은 하더라도 환자의 보호자가 있어야 병원에서 접수가 되는데...”
“여보세요. 당신들은 그냥 물어 본 것인지 몰라도 우리는 꼭 대답해야 되는 것인 줄 안단 말이예요. 그리고 그 병원도 참 웃기네요. 교통사고로 다쳐서 응급실에 들어가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면, 환자가 죽든지 말든지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요?”
“글쎄 참 그것도 곤란하고...”
그러는 사이에 벌써 환자는 응급조치가 끝나서 구급차에 실리고 주변은 순간 고요가 흘렀다.
“그럼 아저씨가 보호자가 되어 주세요.”
“내가 어떻게요.”
“아저씨 인적사항만 알려 주세요. 아니 운전 면허증만 주세요. 내가 병원에 보호자로 대신 신고 처리해 줄께요.”
“이보세요, 내가 면허증 주었다가 나중에 무면허 교통사고로 처리되면 당신들이 책임질꺼요?”
“이봐, 빨리 가야지.”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당신이름만 알려줘요.”
“예, 나는 ○한국이요”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는?”
“여보세요. 이름만 알려 달라고 했잖아요.”
“아따 그 사람 되게 딱딱거리네.”
“뭐가 딱딱거려요. 사실 말이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있잖아요.”
“이봐, 뭘 그리 캐묻나 그냥 차번호만 적으면 되잖아.”
“그렇겠네요.”
이렇게 사고신고를 해놓고도 한국은 한참 동안을 얘기했다.
그래도 수사대에 신고하지 않고 굳이 소방서에 신고한 것은 대화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굳이 따진다면 소방관은 인명 구급과 구난이 첫째 목적이고, 에스맨은 이번 경우 예방보다도 사고 수습처벌이 그 첫째 목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가 아닌 사고의 경우 소방관에게는 수사권이 없어서 대하기가 부담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비켜비켜가 떠나자마자, 이번에는 애고애고 두 대가 동시에 도착했다. 한국은 아직 수사대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거기다가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보험회사에도 연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응급차량에 뒤이어 견인차량도 나란히 두 대나 들이 닥쳤다.
이제 사거리는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가해차량인가?”
“아닌데, 피해자 같은데...”
“그럼 가해차량은 어딨어?”
“맞다. 저기 오토바이가 떡이 된 걸 보면 가해차량 맞나 보다”
아무 상관도 없는 자기들끼리 말이 많다.
“아저씨, 가해자 맞나요? 피해자는 어디 있어요?”
그 사이에 에스맨들의 차량도 한 대 도착했다.
에스맨들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폼이 났다.
누구든지 패트롤카가 위세도 당당하게 경광등을 번갈아 번쩍거릴때는 괜히 주눅들게 되어 있었다.
지금 그 위세 당당한 수사대 차량이 번쩍번쩍 하면서, 위험하니까 몸조심하라고 큰소리치며 도착한 것이다.
에스맨이 도착하자마자 현장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질서유지에는 역시 에스맨이 최고였다.
“난 아직 신고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여보세요, 대한민국 수사대를 바지저고리로 아시오? 다 아는 수가 있단 말이오. 이리 와봐요.”
“이봐요. 이름? 아니 면허증 주시오.”
한국이는 아까 그 소방관에게 면허증 주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요.”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머리에 염색은 해가지고...”
“머리 염색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있건 말건 그렇다는 거지. 별 것 다가지고 시비야?”
‘쳇, 시비는 누가 걸었는데...’ 그러나 이 말은 겉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서만 놀았다.
“이봐, 지름길이 있는데 왜 복잡하게 설명해. 당신 때문에 괜히 한바퀴 돌았잖아? 우리를 이렇게 뺑뺑이 돌려도 되는 거야?”
‘정말 에스맨이 세긴 세구나’ 이 말 역시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그제서야 한국은 짐작이 갔다. 자신이 소방서에 신고하자마자, 소방서는 인적사고라는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대에 통보한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저 병원차는 어떻게 된 것이며, 아직 내 차는 멀쩡이 굴러가는데 견인차는 또 웬 말인가. 그렇다면 가끔 저녁 9시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에스맨들의 무전내용을 도청이라도 했단 말인가.
생각이 이쯤에 다다르자 한국의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이제는 병원 구급차나 차량 정비소의 견인차에 타고 온 사람들이 에스맨들 보다도 더 무서운 마치 저승사자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상황이 이런 정도가 되니 주변의 회사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은 구경꾼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가해자가 된 듯하여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잘 잘못은 따져보아야 하지만, 자신은 전혀 다친 곳도 없이 멀쩡한 것 자체가 가해자라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았다.
공단 제1사거리는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라서, 한국이 출퇴근을 할 때면 거의 이사거리를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까 소방서에 신고할 때도 공단 제 1사거리는 아예 입에 올리기도 싫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 따져보지도 않고 죄인이 된 듯하여 부끄러워졌다.
그 사이에도 에스맨 한명은 이리저리 사고현장을 사진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 그런데 이 사진기 왜 샤타 소리가 안 나지?”
나이 어린 에스맨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이런 말을 하자 옆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군댔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권총도 실탄이 없는 겁주기용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사실 교통사고 처리하러 오는 에스맨이 권총에 실탄을 넣고 출동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일 것이다.
카메라와 실랑이를 하는 에스맨을 보고 답답해하던 한국이가 거들었다.
“이리 줘 보세요, 나도 한 번 봅시다. 샤터가 안 눌러지는 것이 건전지가 약한 것 같아요”
“배터리요? 그런데 지금 배터리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다녀와야겠습니다.”
“좀 볼 수 있어요? 배터리가 어떤 것이 사용되었는지 봅시다.”
견인차 기사가 에스맨한테서 카메라를 빼앗다시피 받아 들었다.
“글쎄, 이런 배터리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으니 그걸 쓰면 되겠네. 이 정도는 있어야 비상 구난차가 되는 거 아닌가?”
한국이 듣기에 견인차 운전기사와 에스맨의 대화수준이 거의 같았다.
그러고 보면, 에스맨과 저승사자는 동격임에 틀림없었다.
“요즘 에스맨 뽑는 시험이 어렵다던데...”
둘러싼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렇지? 이번 총선에서 봐도 알 수 있어. 숙제 잘하고, 검정차타고 다니면서, 매트도 없는 국회에서 업어치기 잘하는 사람보다도, 말로라도 민심을 잘 헤아린 사람들이 더 많이 당선됐잖아.’
‘그럼. 그렇게 돼야 하고말고...’
‘에스맨이 그냥 에스맨인가? 해결사라서 붙여진 건대. 우리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잖아. 아닌가?’
‘괜히 겁먹었었잖아’
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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