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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는 희안이

꿈꾸는 세상살이 2006. 7. 6. 09:31
 

서울가는 희안이

                                               한 호철

희안이는 어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희안이가 살고 있는 곳과 서울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씩은 다녀옵니다. 

이번 나들이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차였습니다. 우주 과학에 관한 큰 전시회를 관람하는 길이었기에 더욱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구는 우주 속에서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희안이가 즐거웠던 것은 그 이유뿐이 아니었습니다. 겨우 초등학생인  희안이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약속대로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바꾸고 아빠는 차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희안이가 운전하면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신다던 엄마도 아무 말 없이 듣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은 벌써 알고 계시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시동은 걸려 있으니 다음은 안전띠를 매자. 또 모르는 곳까지 가려면 우선 네비라는 지도를 켜야 된다.”

“지도책을 펴는 것이 아니고 지도를 켜요?”

“그래. 네비게이션은 우리나라의 지도를 모두 저장한 이 시디를 켜서 위치를 확인해주고 나서 거기까지의 길을 정확하게 안내받는 장치를 말한다.”

“우와! 그럼 길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그럼. 어디 그뿐인가. 그 길의 현재시각 교통상태를 알려주니 정체가 얼마나  심한지, 혹은 사고가 났는지도 알 수 있단다.”

“아빠. 그런데 어떻게 켜요.”

“응. 간단해. 여기에다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한글로 적으면 돼. 잘 모르는 곳은 생각나는 대로 적어. 그러면 비슷한 명칭이 모두 뜨거든. 그 때 자기가 찾는 것에다 표시를 하는 거야.”

희안이는 벌써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아빠가 운전을 하도록 해 준다는 말 한마디에 자신은 운전 면허증이 없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은 상태입니다.

벌써 우주과학 전시회를 관람하고 그 속에 빠져버린 듯합니다. 어쩌면 달나라에 가는 기분이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학생이 되면 지구과학을 열심히 배우겠다던 생각을 벌써 달성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희안이는 혹시나 그 사이에 아빠의 마음이 바뀌어 운전을 못하도록 하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재빨리 농수산물도매시장이라고 적어 보았습니다. 집에서 마주 보이는 곳이 황주 농수산물도매시장이었기 때문에 이 단어가 생각났나 봅니다.

탐색이라는 표시를 누르자마자 작은 화면 안에 농수산물도매시장의 명칭 50여 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희안이가 얼른 황주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모르는 척했습니다.

“자 다음은 안전쿠션을 설치하자. 저기 에어 자켓이라고 쓰여 진 것을 눌러라”

희안이가 아빠의 말씀대로 에어 자켓 단추를 조심스럽게 누르자 몸 옆에서 공기주머니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고무풍선을 부는 것처럼 커지더니 몸에 착 달라붙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 더 부풀어 오른 후 마침내 멈췄습니다.

“아빠. 마치 공기 주머니 옷을 입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러니 에어 자켓이라고 할 수 밖에. 이 에어 자켓은 초보 운전자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안전 운전하도록 만든 거란다.”

“옆에 에어백이 달린 차가 있잖아요.”

지켜보시던 엄마도 거들었습니다.

“그래요. 사이드백이라고 하는데 그 것은 차량 옆에서 일정 힘 이상으로 충격을 가했을 경우에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지. 그러나 이 에어 자켓은 처음부터 내가 임의로 작동시키니까 작은 위험도 미리 방지할 수 있지.”

“에어백은 한 번 터지면 다시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던데 이것도 그래요?”

“아니야. 에어백이 강한 충격을 받아야만 작동하고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에 비해, 이것은 언제든지 설치하고 접을 수가 있는 걸. 그래서 편리하다는 것이야.”

“그럼 이것이 충격을 받았어도 다시 접어 쓸 수 있나요?”

“아니지. 그 때는 이 에어 자켓도 다시 쓸 수는 없어. 만약 다시 쓰려면 공장에 가서 수리를 받고 안전점검을 받은 후에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아빠. 차 안의 공기가 답답해요. 날씨도 좋은 데 문 좀 열어줘요.”

“그러자. 이런 때는 선루프를 이용하자. 이것은 어두운 실내를 밝게도 해주고 환기도 시켜주는 역할을 하지. 지난 월드컵때 사람들이 차 지붕위로 몸을 내민 것은 모두 이 선루프를 열고 일어 선 거야.”

“알아요. 이것은 다른 차들도 모두 달려 있던데요.”

“얘야. 달려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각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거야. 이 선루프는 햇빛을 가리는 블라인드가 장착되어 있거든.”

“알았어요. 그럼 시원하게 선루프를 열어 보겠습니다.”

“좋아하기는. 뭐가 그리 좋으냐?”

엄마는 화난 것도 아니지만 칭찬도 아닌 말투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아니, 엄마 같으면 안 좋겠어요? 저보고 운전하라고 하셨잖아요.”

“얼씨구. 얘 좀 봐. 너 보고 운전하라고 했다고 정말로 운전을 시킬 것 같아?”

“왜 안돼요?”

“그걸 말이라고 하니? 운전도 못하는 너에게 우리 온가족 목숨을 맡길 수는 없잖아.”

“자. 자. 싸우지들 말고 내 말 잘 들어봐. 다음은 ADA 다. 이걸 눌러봐”

“아빠는 지금 아들을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

“갑자기 왜?”

“저도 학교에서 다 배운 영어정도 가지고 이걸 눌러라. 저걸 눌러라 해요?”

“하하하. 겨우 그 정도 가지고 화를 내? 그럼 운전 못하지. 운전이란 것은 말이야 항상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거든. 그러니 어떻게 너에게 운전대를 맡기겠니? 역시 엄마 말씀이 맞는 것 같구나.”

“아니에요. 저도 차분히 할 수 있어요. 얌전히 있는 저를 영어도 모르는 아들이라고 무시하시니 그랬던 것이지요.”

“녀석이 끝까지 우기는 군.”

“여보. 넘어 갑시다.”

조금 전까지도 아빠 편이던 엄마가 오히려 희안이를 거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빠. 이 ADA는 뭐하는 거예요?”

“응. ADA는 아무나 운전할 수 있는 자동운전 장치라는 뜻이다. 이것이 작동하면 지금 운행 중인 도로에서 규정 속도 이하로 조절되고, 신호가 바뀌면 신호에 따라 차가 멈추는 등 그야말로 자동이란다. 그 뿐이 아니야. 앞 차와의 거리도 속도에 따라 적절하게 유지하고,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 것에 맞춰 정확한 조치를 취하는 장치란다.”

“그럼 이 장치는 비쌀 텐데 누가 살까요?”

“암. 사고 말고. 다른 차보다 조금 비싸기는 해도 졸음운전이나, 운전부주의로 생기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차량 수명이 늘어난단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셈이지”

“그러면 출발하고 멈추고, 사고도 예방하고 글자 그대로 자동이네요?”

“그렇지. 만약 가는 길이 구부러져 있으면 그 도로를 따라 핸들이 움직이지. 게다가 앞차가 천천히 가는데 옆 차로가 비어 있으면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추월까지도 가능한 기능을 가지고 있단다.”

“아빠. 그럼 운전자가 없어도 차 혼자서 길을 갈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그러나 이 차는 모든 사람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고 가정했을 때 적합한 차란다. 만약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너무 많고, 예측이 불가능한 사각지대에서는 약간의 혼선을 가져 올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통법규를 잘 지키기로 유명하니까 믿고 가보기로 해요.”

“그러자. 우리를 못 믿으면 누굴 믿겠니. 그럼 출발 단추를 눌러라.”

“그럼 갑니다. 출발~”

“뚜뚜뚜뚜... 안전띠를 매십시오.”

“이게 무슨 소리지? 안전띠를 맸는데.”

“나보고 하는 소린가?”

알고 보니 아빠가 설명해 주실 때 엄마는 안전띠를 풀어 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차가 출발할 때는 미처 안전띠를 매지 못하신 것이었습니다.

“야! 차가 그런 것도 아네.”

“우리 아들이 차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자. 이제는 정말로 출발합니다. 출발~”

차는 미끄러지듯이 나갔습니다. 그러나 희안이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거야 희안이가 처음 해보는 운전이라 그랬겠지만, 이 정도는 기계가 알아서 해결해 주는 아주 편리한 차라는 것을 아빠만 알고 계십니다.

차가 출발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가자 바로 신호등이 나타났습니다. 차는 다시 멈추고 차 안은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엄마는 희안이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시는 눈치입니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차가 출발했습니다. 이때 또 음성안내가 나왔습니다.

“잠시 후 유턴을 하겠습니다.”

“어? 왜 유턴을 하지?”

아빠는 많이 놀라셨는지 큰 소리를 치셨습니다. 안 그래도 희안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걱정이 되셨는데, 음성안내마저 반대로 알려주니 혹시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겁이 나셨나 봅니다. 만약 그러면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그 사이에도 차는 전진하여 이미 방향을 완전히 돌린 상태였습니다.

“야. 야. 차를 세워라.”

“어떻게요.”

“아니지. 내가 눌러야지.”

아빠는 황급히 차량정지 단추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차는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고 속도를 낮추더니 도로 우편에 멈췄습니다.

“아니. 어찌된 거야? 목적지가 황주로 되어 있잖아.”

“그럼 우리가 황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엄마도 걱정이 되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어 갈 즈음 소나기라도 오려는지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면서 흙먼지가 날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시 음성안내가 들려왔습니다.

“먼지가 들어오니 선루프를 닫겠습니다.”

스르르르 딕.

“선루프에 이물질이 걸렸습니다. 물체를 치워 주십시오.”

“아빠. 무슨 소리에요.”

“응. 이것은 바람이 불어오는 중에도 흙먼지 같은 것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닫히는 것이야. 그런데 창문에 뭐가 걸려 있으니 닫을 수 없다는 말이지.”

“그렇네. 태극기가 걸려 있잖아.”

엄마는 불안하다 못해 화가 많이 나신 모양입니다.

“희안이 내려. 나하고 바꿔.”

엄마가 운전을 하겠다고 하신 것은 더 이상 희안이에게 운전을 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위험요소는 모두 제거되었는데 말입니다.

뒷좌석으로 밀려난 희안이는 머쓱해져서 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차가 흔들거리고 엄마한테 야단맞은 것이 서운하여서 글씨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괜히 투정을 부려 봅니다.

“엄마. 차가 흔들려서 도대체 책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면 너만 자기부상을 시켜주지.”

아빠의 말씀 한 마디에 희안이가 앉은 의자는 공중에 떴고, 차가 흔들려도 의자는 꿈쩍도 안했습니다. 마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마도 무중력상태가 이런 것인가 생각됩니다. 희안이는 시력도 보호되고, 몸도 편안해졌으니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더 이상 터뜨릴 불만도 없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보니 희안이는 심심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생각난 것은 컴퓨터게임이었습니다. 중간에 내려서 오락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아빠. 어디서 오락 게임 좀 하고 갈 수 없나요?”

“왜 없어. 한 게임 하고 갈까?”

“예. 정말 게임하고 가요.”

아빠가 몸을 뒷좌석으로 기울이는가 싶더니 PC 단추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앞좌석의 등받이 뒤에서 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이고 노트북이 나왔습니다.

“와! 노트북이다.”

“이 노트북은 출고시 옵션으로 달려 나왔기 때문에 별도의 안테나나 인터넷 선이 없어도 무선 랜을 가동 시킬 수 있단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이냐”

“마우스에 카메라가 달려 있네요? 그럼 화상 회의도 돼요?”

“그래. 마우스에 카메라가 있으니 바로 스캔을 뜰 수 있는 겸용이다.”

희안이가 요구하는 것은 뭐든지 해결되었습니다.

한참 지나자 희안이가 크게 소리쳤습니다.

“아빠. 제 말이 맞지요.”

“맞긴 뭐가 맞아. 병식이도 왔는데 어서 일어나 이거나 잡아라.”

“아빠. 우리 서울에 언제 갔다 왔지요?”

“글세. 두 달쯤 되었나?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희안이는 눈만 쓱쓱 비빌 뿐이었습니다.

“너. 또 꿈꿨구나. 그렇지?”

희안이 아빠는 에어백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십니다. 오늘도 차량용 에어백을 뜯었다가 다시 붙이는 중이셨습니다. 에어백을 뜯을 때는 희안이도 곁에서 거들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그사이 잠깐 졸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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