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만 잘 살자
한 호철
어떤 여인이 일찍 혼자되어 외롭고 힘들게 살아갔다. 이 여인은 있는 고생 없는 고생 해가면서 돈을 조금 모았고, 그 돈으로 아이들도 가르쳤다. 뭐 특별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그냥 저냥 가르치면서 남들 흉내는 다 냈다.
그러는 중에 아이들도 별 무탈하게 장성해서 시집 장가가는 그런 날도 오게 되었다. 지난날의 고생을 생각하면 여간 대견스럽고 이만저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떠난 영감을 생각하면 나중에 만나도 할 말이 있을 정도가 되어 마음이 놓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날도 만나보지 못하고 떠난 것에 대한 연민의 정도 피어오르는 시간도 있었다.
이런 때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니 그 기쁨이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한 감정으로 모든 것을 아들에게 쏟아 부었다. 혼수도 넉넉히 장만하고 결혼식도 성대하게 준비하였다.
남들은 아파트도 전세로 얻어 준다지만 이 여인은 아예 처음부터 새 아파트를 사서 주었다. 그것도 주택부금이 들어가면 생활에 부담이 될까봐 전액 현금으로 주고 산 아파트였다.
이 아들은 보통 사람 중에서는 땡잡은 사람이 되었다. 홀어머니 밑에서였지만 공부도 제대로 다 마쳤고, 직장을 잡을 때도 어머니 덕을 톡톡히 보았다. 지금 잘 나가는 직업보다는 앞으로 유망 직종이 무엇인지 어떤 직군이 안정적인지 미리 다 알아보시고 조언해주신 어머니가 계신 것이었다.
그런 아들이 이제 장가를 가게 되었으니 이 여인은 얼마나 기쁘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러다보니 새로 맞는 며느리도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예쁘기만 한 며느리였다. 어떤 때는 아들보다도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며느리였다.
결국 이 여인은 며느리에게도 정을 쏟아 붓게 되었다. 며느리가 하자는 것은 모두 들어주고 싶은 그런 정도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기로 소문난 사이가 되었다. 며느리는 주말이면 시어머니를 찾아왔다. 다 늦은 해질녁에 찾아와서 입으로만 어머니를 거들고, 돌아갈 때는 바리바리 챙겨서 떠났다. 찾아 올 때는 가볍게 돌아 갈 때는 무겁게 돌아갔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사랑으로 감싸 주었다. 며느리에게 잘해 주면 그 모든 것이 자신과도 같은 아들에게 돌아 올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아까운줄 몰랐다.
며느리가 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있으면 주고 없으면 옆집에서 빌려서라도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주고 나면 어머니는 이것을 보충하느라고 또 다시 고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차비를 아껴야하니 웬만한 거리는 걸어야 했고, 더워도 선풍기를 틀지 않았다. 그냥 손으로 부채를 부치면 시원하니 구태어 전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여름에 그 흔한 모기약 한 번 시원하게 뿌리지 못했다. 모기약 대신 쑥으로 만든 모기향을 피우고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모기장을 치고 자면 그만이었다.
가을에는 자신이 농사짓는 것 외에 이삭을 줍기에도 바빴다. 새 것은 내다 팔아서 아들을 주고 자신은 부스러기로 연명을 하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어 칼바람이 불어도 보일러를 제대로 돌리지 못했다. 기름 값이 비싼데 노인 혼자서 따뜻하자고 보일러를 틀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추워도 그냥 웅크리면 그만이었고, 정말 추운 날이면 전기 매트를 잠깐 틀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이 밤이 길다 해도 잠깐 버티고 나면 이내 아침이 되고 쨍하고 해가 뜰테니 무슨 불평이 있으랴.
그러는 중에 며느리가 재태크를 하여 집 평수를 늘려 가게 되었다. 아들이야 그냥 직장생활을 하니 뾰족한 방법이 없었겠지만, 며느리가 수단이 좋았던 모양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시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항상 며느리가 시골에 다녀오고, 물건도 장만하니 베일에 싸인 여인이며, 뭔가 능력이 있는 여인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며느리도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능력 있는 여자로 통하고, 교양 있는 여자로 통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있어 보이고 앞으로도 더욱 부를 축적할 능력이 있는 여자처럼 비쳐졌다.
며느리도 이런 대접이 좋았다. 자신을 평가함에 있어 남들이 자신을 보고 행복을 가꾸는 여인으로 생각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능력을 가진 여인으로 알아주는 것이 좋았다.
급기야 잘 난 며느리는 세월에 늙고 삶에 지친 시어머니가 자신을 방문하는 것도 꺼리게 되었다.
넓고 깨끗한 새 아파트로 이사 간 며느리는 주변의 환경에 주눅 들고 말았다. 남들은 처음부터 얼마의 재산을 물려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이사 오는 집마다 사용하던 가구를 그대로 가져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사 오는 날에도 식구들이 여기저기 오고가는 그런 부산함도 없었다. 그냥 이삿짐센터에서 알아서 처리하였고, 여기저기 움직이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즐거움도 잠깐뿐, 이 며느리는 기가 죽고 말았다. 그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자기가 자수성가하여 돈도 벌었고, 집도 늘려 간다고 자랑자랑하였었다. 그러면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곤 하였었는데 여기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 잘났네 하고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도 아예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용하던 가구를 들고 온 것은 자기뿐이며, 그나마 살림살이가 고가의 비싼 장식이 있는 것들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것이었으니, 옆집 보기에 초라해 보인 것 같아 자기 스스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집안에 있는 살림이야 문을 닫으면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집 밖에 세워 놓은 자동차는 어디 숨길 데가 없었다. 남들이 안 보이는 곳에 놓는다고 지하로 끌고 가도, 거기에는 무인 카메라까지 있어 나중에 뚜렸한 증거로도 남았다.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며느리는 안달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남편 입장에서는 고급 승용차를 새로 구입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 가지 묘안을 내어 시어머니를 찾았다. 결국은 시어머니에게 현재의 상황을 보고 드리고, 자동차 살 돈을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한 번에 오냐 하고 들어 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끈질기게 부탁하다 보면 그래도 언젠가는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상황을 눈치 채신 시어머니는 도통 승낙 하지 않았다. 사실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자기 처지로서는 새로 살 자동차 값을 쉽게 내 줄 형편이 되지 못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매번 부탁할 때마다 그럴 돈이 없다고 하면서 거절을 하였다. 그러나 아들을 생각하니 딱 잡아떼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가슴이 아팠다.
부탁과 거절에 지치지도 않은 며느리는 급기야 아들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가 멀어서 한참을 타고 가야 하는데 고물차로는 다니기가 불안하다는 핑계가 등장하였다. 겨울에는 시동도 잘 걸리지 않고 언제 고장 날지도 모르는 차라서 안전운전에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며느리와 아들의 행동으로 보아 이게 다 꾸며낸 거짓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궁색하면 아들이 저런 거짓말까지 할까하는 안쓰러움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더 풍족하게 해주었더라면 저런 거짓말쟁이 아들을 키우지는 않았을 것을 생각하니 거짓말하는 아들이나 며느리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는 아들이 안전운전에 위험하다고 하는데, 얼마나 더 비정한 어머니가 되어야 할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죽으면 썩어서 없어질 몸 아껴서 무엇하며, 지금 내가 조금 더 편하고 잘 살아서 무엇에 쓰랴 생각하니 바로 정답이 나왔다. 내가 이제껏 혼자서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무슨 호강을 하겠다고 내 욕심을 차릴 것인가 생각하니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신을 아껴주던 영감은 꽃다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떠났는데 내가 무슨 물욕을 부릴 것인가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하였다. 또 다시 찾아와서 부탁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선뜻 그 청을 들어 주었다. 어려운 청을 들어준다고 기뻐하는 아들에게는 끈질기게 부탁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준다는 핑계로 무마하고 말았다.
새 차를 산 아들은 어머니에게 그 흔한 시승식 한 번 시켜드리지 않았다. 물론 며느리도 그런 일에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노인네가 새차를 타거나 헌 차를 타거나 아무 차나 타고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였다.
하긴 어머니는 아들네에 갈 때면 언제나 버스를 타고 가셨다. 그 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아들이 새로 산 차보다야 훨씬 크고 안전한 차였고, 거기다가 전문 기사까지 딸린 차니 무슨 서운함이 있었을까.
새로 이사한 아들네 아파트를 방문한 어머니는 여기저기 처음 보는 광경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낮인데도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서 한참을 헤메고 있을 때 아들이 때맞춰서 퇴근을 하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아들이었다. 씩씩하게 걸어오는 폼도 멋있어 보였다.
아들과 함께 다정히 얘기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반대편 저쪽에서 며느리가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 어머니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직장이 멀어서 고물차로는 안전에 위험을 느낀다더니 하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차마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로 산 차가 폼 나고 좋다고 칭찬만 하셨다. 아들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시원히 거들고 나섰다. 직장은 걸어서 10분이면 되는데 굳이 차를 타고 갈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영감이 자기를 생각해주던 것과 자신이 아들을 생각하는 것을 생각해보니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자식이 자신에게 하는 것을 보니 갑자기 목이 메였다.
며느리는 자신의 행동이 탄로라도 날까 두려웠는지 시어머니를 온갖 애교로 모셨다. 시어머니는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손자 손녀의 재롱도 받고 하루저녁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음식도 처음 먹어보는 것들로 풍족하게 차려졌다. 그러나 그런 음식들은 고생만 하다가 먼저 간 영감을 생각하니 목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올 때는 무엇인가 한 보따리 가져 왔지만, 내려 갈 때는 달랑 핸드백 하나뿐이다. 어서 가서 영감 사진이라도 한 번 더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은 바쁘기만 하다.
다음 날 어머니는 문고리에 목이 메여 있었다.
며느리는 난리를 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도 우리 집에서 즐겁게 지내다 가신 분이니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상시 아들에게 하신 행동이나 자신에게 해주신 행동으로 보아서도 자살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들의 성화에 못이긴 경찰은 부검을 하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질식에 의한 사망원인 외에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런 어머니의 위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24시간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그런 상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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