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항상 생각하자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4:22
 

항상 생각하자 / 한 호철


우스운 이야기하나를 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이 한참 명성을 날리던 그 때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그래서 부유한 몇몇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신문에서 보아 알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돈은 많이 벌어서 차도 샀고 운전기사까지 두고 다녔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유명해지자 대학이나 기업, 연구소등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고, 여러 곳에서 학술 발표도 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아인슈타인도 원고를 써서 열심히 보고, 외우고, 연습을 한 후 강의에 임했다.  그리고 사실 강의하는 내용은 청중의 수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뉴턴은 애완 고양이가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문 열어 주는 것이 귀찮아 벽에 구멍을 뚫어 주었고, 애완견용으로는 그 보다 조금 큰 개구멍을 별도로 뚫어 주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아인슈타인은 여러모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조금 나은 듯 하다.  아인슈타인은 항상 몇 가지 유형의 강의 원고를 준비해 가지고 다녔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무리를 하여 몸살이 났다.  오늘도 강의하기로 하고 돈까지 받았는데 취소 할 수도 없고,  지금은 자동차로 이동중이니 이제 와서 연기한다고 하기에도 늦었다.  그렇게 고민 고민하며 가는 것을 앞좌석의 기사가 눈치를 챘다.

  `박사님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제가 길이라도 잘못 들었습니까'하고 물으니, 아무런 도움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하소연이라도 해본다고 걱정스럽게 대답했다.

오늘은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로 했는데, 몸이 아파서 서있기조차 힘드니 여러 가지로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기사는 그런 것 가지고 무슨 걱정이냐고 자기한테 맡겨두라고 했고, 대학의 강의실 문 앞에서 아인슈타인에게 조용히 말했다. 

"박사님은 맨 뒤쪽 문 옆의 의자에 앉아 계십시오. 오늘 강의 주제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는 이 운전기사가 강단에 서서, 자신을 아인슈타인이라고 소개하고 정해진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금도 막힘 없이 외운 대로, 아인슈타인의 원고 그대로였다.  학생들은 중간에 질문할 여유도 없었지만,  이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  그 비결은 아인슈타인이 원고를 읽다가 차에 두고 내리면, 틈나는 데로 그 원고를 아예 외워 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그 어렵고도 긴 상대성원리 강의가 끝나고 내려오려는 순간, 그 중 머리 깨나 트인 학생이 질문을 하였다.  뒤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의 원고를 외워서, 자신의 체면을 세워준 기사가 무척이나 고맙고 대견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은 원고에 없는 것이므로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 그러나 학생의 질문 내용을 들어보니 자신도 정리가 덜 된 상태로 개념만 잡고있는 정도인데, 저 무식쟁이 운전기사가 어떻게 답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만약 한마디라도 허튼 소리를 하면, 세상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한 순간에 무식쟁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이 아인슈타인이고 저자는 운전기사라고 한다면, 그 또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원래 운전기사의 표정만 바라보며 애 간장이 탔다.  그때 그 운전기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학생 참으로 좋은 질문을 했다.  세상의 학생들은 모두 자네와 같이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하여 오늘은 내가 답변하지 않겠네, 그 이유는 예상 질문들을 몇 가지 준비해 왔었는데,  그 정도의 질문이라면 저 뒤에 앉아있는 나의 운전기사도 충분히 답해줄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일세,  만약 그러고도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하면 다시 연락하게, 그러면 내가 나중에 서신으로 자세히 답해 주겠네' 하면서 강단을 내려왔다.  그제야 뒤에 앉아 있던 아인슈타인은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으로 강단에 서서 보충 설명을 했다.  그러고는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운전기사를 박사님으로 모시고 나갔다. 사실 그 기사의 현답으로 아인슈타인은 모든 일이 다 해결되었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기사의 재치 있는 답변일까? 아니면 그보다 앞서 비록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아인슈타인의 강의 원고를 모두 외워버린 기사의 노력은 어떨까?

이런 내용들이야 한낱 우스갯소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웃음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2002.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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