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기회비용의 적용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4:20
 

기회비용의 적용 / 한 호철


나는 업무 성격상 외근을 자주 나가곤 한다.  어떤 때는 하루에 3회 이상의 외근을 할 때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외근은 직장 밖에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동일 생활권내이고 왕복 1시간 이내인 경우에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경우는 편도 10분의 거리에도 출장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의 출장과 간혹 혼선이 되기도 한다.

 나는 한 번의 외근에서 적게는 한, 두 가지의 업무를 수행하고 많게는 예닐곱 가지 정도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 이상의 업무는 한 번에 행하기가 곤란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곤 한다. 그러나 그 나머지 일도 다음날 회사 내에서 행할 업무와 연관된 경우라면 퇴근 시에 이루어질 때도 있다. 어제도 저녁 10시 30분에 모 거래처에 들렀다. 그때 저녁 10시 30분이 퇴근하는 길은 아니었고 비록 개인 볼 일을 보고 난 시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음 날에 그 일을 행하려면 최소한 30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시간이 아까운 이유에서였다.  내가 어제 저녁에 30분을 벌었다고 해서 그 다음날 회사 업무시간이 30분 줄어들고, 그 줄어든 시간만큼의 가시적인 숫자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행하거나 다른 일을 구상하여 효과적인 업무처리를 도울 수 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와 같이 쇼핑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 다투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중 일부는 내가 잘못해서 그런 때도 있지만, 어느 경우는 순전히 직장일 때문일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아내가 모기 약을 1개 사면, 나는 거기에다가 10개를 더 추가하여 산다.  그러면 모기 약은 1개 사서 쓰고, 다 쓰고 나면 하나를 더 사서 한 여름 보내면 되는데 웬걸 그리 많이 사느냐고 싸운다.  그러나 그 모기 약 10개는 사실 집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고 직장에서 사용할 것들이다.  물론 직장에서 사용할 것을 내 개인 비용으로 사는 건 아니며 나중에 정산이야 하겠지만, 우선 같은 성능에, 질 좋고,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되는 물건이 회사에서도 소용된다면 직접 현장 구매한다는 개념이다. 솔직히 일반 중개업자에게 배달을 시키면 되긴 되지만, 그러면 가격과 성능, 품질을 보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모기약이야 유료 배달을 시키더라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고,  총체적으로 큰 차이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유료 배달을 시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직접 실행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보니, 이제는 아내도 쓸데없이 왜 하느냐는 말 대신에 어디에서 쓸 거냐고 묻는 정도가 되었다.

 빌 게이츠는 땅에 떨어진 10만 원 권 수표를 줍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해서 그냥 지나쳤다고 했는데,  그 비서는 참으로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허리를 굽혀 수표를 줍는 것보다, 빌게이츠의 기회 비용이 훨씬 더 크다고 말해도 이해는 하겠다. 그러나 비서의 기회비용은 그렇게 크지 않으므로 자신이 주으면 되는데, 괜히 빌게이츠를 핑계로 소문만 내는 그러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은 빌게이츠의 기회 비용이라는 것도 사업을 구상하고,  개발 실천하는 기회 비용이 큰 것이지, 그 외 잠자는 시간 등의 기회비용이 큰 것은 아닌 것이다.  24시간 동안의 모든 순간을 기회비용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모든 사람들이 그 작은 일들까지도 회사의 책상 앞에 앉아서, 주어진 업무시간 동안에만 행하다 보면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된다.

 어느 일이건 남에게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을 확인하고서야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을 하면서도 덤으로 회사 일을 하는 경우가 있고, 이런 일들을 자주 행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 외의 시간에는 개인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퇴근하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물론 회식이나 연장 업무상 모임도 있긴 하지만, 앞의 예처럼 퇴근하면서 잠깐 들러서 일처리하면, 다음날 직장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일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고, 가치가 적은 일이라 해도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업무중의 하나라면, 이 모두가 내가 수행하여야만 될 일들인 것이다.  그래서 퇴근 후나 휴일에 행하기 좋은 일은, 가치는 적으면서도 반드시 시간이 소용되는 일들이 부수적으로 행하기에 적합한 것들이다.  물론 모든 일들을 항상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세대는 일 중독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딘지 허전한 생각이 들고,  항상 머릿속이 복잡하고 바쁜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런 성격 탓에 업무 적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덕을 보기도 한다.

 무슨 일을 행해야 할 때에,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일 것이라는 판단이 바로 서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어느 백과사전에도 없고, 누가 손에 쥐어 줄 수도 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컴퓨터의 정보란에 모두 업데이트 시킬 수도 없고, 정작 소수인 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무리 큰 컴퓨터에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집안 식구들이 알게 되면 가족끼리 다투는 일이 한가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개인 생활 속에서도 회사 일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회사는 내가 긴 시간 동안 몸담아 일해왔고,  또 솔직히 일한 대가를 받아 생활해 왔기에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직장은 우리 회사이고 가족도 우리 가족인 것이다.  2002.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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