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 깨나 자식 걱정
어제는 군대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최근 제대한 젊은이들처럼 들떠 있지도 않았지만 화제가 되었습니다. 동기교우 중 현역군인 최고의 계급과 최고의 직책을 맡고 있는 모씨의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35세에서 59세까지 분포되어 있는 9명이 매월 만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요즘 새벽 4시에 잠을 깨고는 아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옆에 있던 회원들이 핀잔을 하였지만 그래도 많은 걱정이 되나 봅니다. 물론 자신도 가설통신 주특기를 받았고, 나중에는 대대장 당번병으로 근무하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도 그 당시의 대대장과 연락하고 지낸다고 땅이 꺼지게 자랑하던 회원이었습니다.
아무러면 남의 얘기를 그냥 팍 무시할 수도 없어서 많은 관심을 가진 척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얼마 전 군에 간 아들이 폭파주특기를 받았나 봅니다. 그 후로 저녁 조용한 시간이면 잠이 안 오고, 잠이 들었다 해도 새벽이면 일찍 깨어 날을 샌다는 것이었습니다.
폭파주특기 좀 받았기로서니 뭐가 그리 걱정이냐고 또 나무랍니다. 특히 폭파와 철조망 그리고 지뢰를 전문으로 다루던 야전공병 출신인 저는 더욱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월남전 얘기도 나오고, 군 장비의 현대화 과정에 얽힌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월남전에서 최신 무기로, 최신 장비로 근무하다가 우리나라 최전방의 장비를 비교하니 정말 눈물이 났다던 다음얘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어느 날 경계근무를 서는데 뭔가가 감지되었습니다. 물론 암호와 이런 저런 비상조치 후 마지막으로 현장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사수가 지휘를 하였고 긴장한 부사수는 서치라이트를 잡으며 ‘라이트켜’를 복창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조수는 발전기가 있는 곳으로 재빨리 뛰어갑니다.
군대에서 적의 상황을 밝힐 전원마저 충분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자가발전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돌리는 개별식 발전 장비를 운용했습니다. 일견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 사이 어두움을 가르는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옵니다. 갑자기 주위가 바빠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적막강산이 되고 맙니다. 발전기가 시원찮은 탓에 고요한 전방의 밤을 뒤흔들어야 할 발전기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조수는 이마에 땀이 맺힙니다. 혹시 그 사이에 적이 코앞에까지 왔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죽어도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는 사명감만 있을 뿐입니다. 많은 부대에서 그런 자전거 발전장치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안장이 있는 일체형이 아니라, 달랑 바퀴 하나에 발전기만 달린 완전 수동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돌리고 또 돌려야 했습니다. 마치 시발택시처럼. 우리는 그 말도 모두 믿었습니다.
서치라이트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시원한 빛 대신 이른 새벽 교회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마치 흔들흔들 마파람의 코스모스의 맥과 같았습니다.
그랬던 군대에서 이제는 폭파주특기를 받았다고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숙부께서 군대 지뢰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그러니 폭파주특기 소리만 들어도 그 당시의 악몽이 떠올랐던 것이지요.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도 없지만, 어디 걱정한다고 아주 작은 위험 하나라도 없앨 수가 있습니까. 아들을 믿고, 부대를 믿고, 국가를 믿고, 국민을 믿으면서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밖에요. 그렇다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요. 20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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