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귀는 자르지 마세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날카로운 가위를 들고 한 손으로는 귀를 잡아당기는데, 가위는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으니 그 심정이야 말해 무엇 하랴. 가위가 가까이 다가 갈수록 아이는 계속하여 몸을 빼며 애원하였다.
‘엄마! 내 귀는 자르지 마세요.’ ‘그래, 알았어. 안 자를게. 걱정 하지마.’
20년 전의 그 아이는 엄마가 가위를 들 때마다 울먹이며 애원하였다. 행여 귀를 자르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몸을 움츠리고, 또 힐끗힐끗 돌아다보았다. 이발 기술이 없는 엄마는 고정된 조발기구를 사용하였다. 그 다음에는 일회용 면도기로 면도를 해주었다. 면도라고 해도 겨우 목덜미 뒤의 머리를 손질하는 수준이고, 귀 뒤를 가지런히 다듬는 정도였다.
그런데 처음 다루는 면도기로 아이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작은 상처를 입히고 만 것이다. 다행히 피부를 살짝 건드린 정도에 핏발이 약간 비치는 것이라서 큰일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매일 면도하는 남자들이 다치는 것보다도 미미한 상처였다.
그랬어도 그냥 아무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순진한 엄마의 호들갑이 화근이었다. 엄마 생각으로야 자기 때문에 다쳐 피가 나니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에는 엄마의 실력이 오죽하면 다칠까하고 그대로 가슴까지 전이된 상처로 남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엄마는 일부러 상처를 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난 번 잘못한 일로 엄마한테 혼 난 것을 생각해보면 엄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만 보더라도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며 자기 마음은 전혀 알아주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귀를 자르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엄마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못하면 귀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 실수로 귀가 잘리더라도 엄마는 그냥 단순한 실수일 뿐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아이는 바람은 실수로라도 그런 일은 전혀 없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로 귀를 자르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아들이 군대에 갔다. 돌이켜보면 엄마를 바라보면서 엄마에게 믿음을 달라고 애원하던 초롱한 눈망울의 아이가, 이제는 엄마를 지켜 준다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군대에 갔다.
엄마는 지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실수로 귀를 잘라버린 것을,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전해주지 못하는 것을, 그런데 벌써 곁을 떠나가다니.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채워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네가 도대체 국가의 어떤 믿음의 소리를 들었단 말이냐.
헤어지면서 걱정하지 말라던 아이의 말을 믿지 못하는 엄마는 지금 그렇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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