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상머슴은 없습니다.
얼음을 타다가 군논에 빠져서 바지를 적시면 어느 결에 달려와 옷을 말려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푸라기를 모아놓고 담뱃불로 불을 붙여주었습니다. 자칫하면 나이론 옷을 태울 수도 있었겠지만 용케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집에 돌아 올 때는 항상 멀쩡하게 마른 바지를 입고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상머슴이 도와준 때문입니다.
양지바른 담벼락 밑에 줄지어 서서 연을 날릴 때도 곁에서 지켜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열 살이 넘게도 더 많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연을 날리지도 않으면서 항상 내 곁에 붙어 있었습니다. 행여 연이 곤두박질이라도 치면 얼른 뛰어가서 연을 날려주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연줄만 당기고 연을 까부를 뿐이었습니다.
마당 건너에 있는 고구마 통가리에서 고구마를 꺼내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을에 거둬들인 고구마를 마당에 쌓고 겨우내 얼지 말라고 짚으로 감싸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쥐가 넘보지 말라고 함석도 동여매고 지붕도 했습니다. 맨 위에는 원추형 용마름도 하였습니다. 연을 날리다가도 얼음을 지치다가도 군고구마를 먹으면 추위를 잊었습니다. 비록 입가에 새까만 껌정이 묻어도, 너무나 타서 두껍게 앉은 껍질을 벗기다가 그만 손이 데어도, 고구마를 맛있게 구워준 사람은 바로 상머슴이었습니다.
소먹일 꼴을 베러 갈 때에 따라나서면 아무 말 없이 승낙해 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다가 지쳐 투정을 부리면 지게에 태우고 갔습니다. 꼴 베는 것조차 귀찮고 힘이 들었겠지만, 그래도 싫다는 군소리 없이 데리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곁에 두고 풀꽃시계도 만들어주면서 삘기도 캐주던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뱀이라도 만나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쫒아주고, 손에 쥐고 있던 낫으로 그만 요절을 내던 사람도 바로 상머슴이었습니다.
수박서리를 하다가 붙잡히면 대신 야단맞고 잘못했다고 빌던 사람도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서는 아무런 고자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미안하기도 하였고, 너무나 염치가 없으면 그만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때릴 때면 상머슴은 아프다고 울면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밥 때가 되면 언제나 나를 찾으러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면 나와 같이 먹었다고 하여 상머슴이라 불렀습니다.
그 사람은 부지런하였고 누가 보든지 말든지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얼굴이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도 옷소매로 한 번 닦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쉬어가며 하라고 해도 알았다고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언제나 우리 집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머슴이 지금은 가고 없습니다. 받은 공도 없이 그렇게 잊고 살았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해보아도 어디에 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논에는 피가 퍼지고 밭에는 깜부기가 널려 있습니다. 콩밭에는 쇠비름도 있고 깨 사이에 명아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일이 있어도 몸이 피곤하면 마다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쉬다가 때가 되면 간식도 먹고,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면 족한 세상입니다. 먹던 간식이 식상하다고 하여 인터넷으로 별미 간식을 찾아보려 합니다. 지금은 상머슴이 없습니다. 다만 귀족 머슴만 있을 뿐입니다. 20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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