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00 잘 있는가?

꿈꾸는 세상살이 2007. 2. 15. 09:58

 

00 잘 있는가.


“00 잘 있는가?”

옆집에 사시는 어르신께서 물어보시는 말씀이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안부를 묻기 위함이 아닌 것을 안다. 그것은 필시 객지에 사는 자식에 대한 소식을 알기 위한 작전용 안부에 틀림없다.

 

“근디 시방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가벼. 아 우리 아들이 어제도 전화가 안 왔어”

그 어르신네 아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식한테서 전화가 안 온 것을 나한테 와서 물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리 허물없는 시골인심이고, 바로 위 아랫집에 산다고는 하지만 어떤 때는 좀 심하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 주인공과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고,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온 동네 친구인 것을.

 

어쩌면 전화가 오지 않은 아들보다도, 그것을 물어보려는 나한테 더 믿음이 가서 그러시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본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왜요. 전화가 안 왔어요?”

“응. 전화가 안 온게 내가 궁금혀서 그려.”

“그럼 직접 전화를 해 보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물어보시고요.”

“싫어. 내가 전화하믄 무슨 일이 있는갑다하고 괜히 걱정허잖여.”

전화가 안 와서 걱정하시는 건 정작 당신이면서도, 아들이 걱정할까봐 전화를 못하시겠단다. 혹시나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지시나 보다. 

“무슨 일은 무슨 일 맞잖아요. 어머님이 아들 걱정하시는 그 마음걱정.”

“안 되아. 그러믄 안 되아. 괜히 잘 있는 아들 걱정시킬 필요 없잖여.”

“그럼 됐네요. 아들은 잘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어르신을 안심시켜 들어가시라고 해본다.

“그러겄지? 아무 일 없겄지?”

 

몸은 이미 돌아섰으나 마음은 아직도 못 미더운 눈치시다. 정말로 자기 자식을 보고 싶으실 때면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가시는 것은 아닐까하는 행복에 젖어본다.

 

그러나 그 친구가 정말 불효자식이라서 전화 한 통 없는 것은 아니다. 명절 때나 집안의 대사 때가 아니라도 한 해에 두 세 번은 꼭 찾아오는 그런 아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에 한 번씩 늦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해서 안부도 묻고 애로사항도 챙기는 그런 효자다. 그렇다면 어쩌다 어머니께서 전화가 없다고 걱정을 하시는 정도가 되었을까.

 

내용인즉 그런 것도 아니다. 매일 문안전화를 하다가 어쩌다가 한 번만 연락하지 못하면 벌써 안절부절 못하시는 것이다. 객지에 살다보니 바쁠 때도 있고, 피곤하기도 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련만 어머니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치 자신을 위하여 자식이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이기주의 마음은 아니었다. 얼마나 바쁘고 힘들면 나한테 매일 해주던 전화도 못할 정도로 고생할까하는 마음이실 것이다. 벌써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아직도 그분에게는 아들일 뿐이요,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는 자식일 뿐이다. 자신은 서울사리를 알지 못하시고, 가진 거라고는 논과 밭뿐이지만 그래도 항상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 하신다.

 

그렇다고 내가 서울로 전화를 해서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니 집에 전화 좀 하라고 할 형편도 아니다. 가까이서 사는 나는 말만 앞세울 뿐 멀리 사는 그 보다도 훨씬 못한 불효자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올 여름에 만나면 그래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네 어머니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그래서 너는 아주 행복한 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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