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향에 가면
고향에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고향은 멀리 타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가까운 이웃 마을에 갔다가 오는 길에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준다. 고향에는 어릴 적 나의 일부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찾는 고향은 나의 기분을 잘도 알아낸다. 내가 우울할 때는 나를 조용히 맞아주고, 행여 누굴 만날까 걱정할 때는 쓸쓸한 골목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내가 들떠 있을 때는 고향 역시 호들갑스럽게 맞이한다. 어쩌다 스쳐 지나 간 듯한 사람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지금 내가 고향에 가면 나는 누구네 자식이며, 누구의 조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분들이 모두 작고하셨지만 여태껏 나는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 50이 넘은 나는 아직도 독립하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의 고향 어르신들은 하늘만큼이나 커 보이고, 세종대왕이나 퇴계 이황만큼 늙어 보였다. 그뿐인가. 점잔하기로는 한석봉의 어머니요, 애국으로는 유관순 누나인줄 알았었다. 그때는 세상의 연령구조가 처음부터 그냥 그런 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철부지가 세상을 어떻게 보든 말든 세월은 저 혼자서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살았다고 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모두 선친이나 삼촌들을 떠 올린다. 나 또한 고향에는 내 어릴 적 기억으로 찾아간다. 머리 속에는 새로운 모습이 아닌 온통 옛날의 풍경들뿐이다. 그것들은 현재라는 명사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었다. 고향은 나를 보더니 과거라는 책을 꺼내 든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서재를 정리하겠느냐며 케케묵은 책들을 꺼낸다. 나도 그 책갈피 사이에서 과거를 불러내어 본다. 마치 마술사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얌전히, 그러나 깊숙이 고향의 품에 안겨본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를 알고, 나의 어머니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나의 형제자매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도 알아보고, 매일같이 찾아와도 정확히 알아본다.
나는 그런 고향이 좋다. 혹여 내가 정신이 혼미하거나, 어쩌다 술에 취해 누구의 등에 업혀 와도 나를 알아보는 고향이 좋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눈만 남기고 얼굴을 싸맨다 해도 나를 알아보는 고향이 좋다. 우쭐대고 싶어서 자동차의 모든 유리에 진한 색으로 선팅을 해도 금방 알아보는 고향이 좋다. 달밤에 비단 옷을 입고와도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보는 고향이 좋다.
고향의 울타리는 그 끝이 없다. 객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도 반겨주고,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마저도 반갑게 맞아준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이나 스쳐지나가는 이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도 고향의 품은 남아있다. 저 한쪽 빈곳에는 야반도주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사립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그곳은 등불도 꺼져있다. 혹시 그가 온다면 부끄러워 할까봐 차마 불을 밝힐 수 없는 것이리라.
고향의 품은 넉넉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죽은 자와 산자를 모두 아우르며 품어오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푸념을 그렇게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고향에 가면 설마하니 내 속마음 하소연 하나 들어줄 이가 없을까. 올 명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그들은 지치고 힘든 어깨를 고향의 품에 묻고, 대신 희망과 용기로 가득 채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머리 셋 달린 도깨비와 용감히 싸울 것이다.
고향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준다. 지금 고향에 가면 내 몸 하나 기댈 곳이 준비되어 있다. 나는 그런 고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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