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와 인생
문짝도 없이 문설주만 있는 대문을 들어서는데 마당이 어수선하다. 바야흐로 부지깽이도 들에 나서 거든다는 농사철이니 그럴만하다. 거기다가 요즈음 농촌은 인구 감소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일손 부족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기둥 옆에 있는 대추나무는 그대로이고, 반대쪽 기둥을 지나 열 발짝쯤 더 가면 감나무도 있다. 뒤뜰에는 지붕보다도 한참이나 높게 솟아오른 밤나무도 그대로다. 혹시나 밤송이가 앞마당에 나뒹굴면 다니는 사람들이 밤 가시에 찔릴까봐 집 뒤에 심었다고 했었다.
언제부터 심어져 있었는지 모르는 대추나무도 대문간에 자리한 연유로 아이들의 연이 수도 없이 걸리곤 했었다. 아이들에게는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하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먹으려 하면 대추나 밤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적합한 그런 실과였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이 먹기 좋은 과일을 언제든지 따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다. 그것은 그런 나무가 있는 집 아이들 앞에 줄서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어쩌다 그 집에 가서 하나씩 얻어먹는 맛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고,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늘 아쉬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따먹고 싶은 생각에 보기만 해도 아까운 과실들을 먹지도 못하고 땅속에 묻어두곤 했었다.
그러나 심은 것마다 다 싹이 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싹이 나더라도 모두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슬픈 것은 그렇게 심은 것이 똘배가 되고, 똘사과가 되며 똘복숭아, 똘감이 된다는 것이었다. 먹지도 못하고 심은 것들인데, 싹이 났어도 다시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까워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그런 중에 시장에서 감나무를 사다가 심은 것이 바로 이 단감나무다. 용돈을 모아 나무를 사고, 구덩이를 파고, 거름도 듬뿍 주었다. 이파리가 몇 개나 붙어 있는지, 꽃은 언제 피는지 애태우며 물도 주고, 강아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판자로 막아도 주었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따라 대처를 나갔던 것이다.
이 감이 뉘감인지 생각하면 바로 내 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감나무에서 감을 툭 따서 바지춤에 쓱쓱 문질러 한 입 베어 문다. 아직 맛이 다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기는 충분하다. 감은 역시 단감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처럼 때맞춰 구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감 몇 개를 더 따서 양쪽 호주머니에 닥치는 대로 몰아넣고 방으로 향한다.
사람 소리는 나지 않지만 잘 들어보면 연장소리는 바쁜 듯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낯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유추컨대 도시에 나간 손자손녀가 온다고 대대적인 집수리를 하는 중으로 보인다. 도시에 사는 손주들이 시골에 오면 가장 불편해 하는 곳을 고치고 있는 것이다. 벌써 몇날 며칠 째 작업 중인 듯 했다. 도시 같으면 겨우 3일이면 될 정도의 일을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던 인부들이 감이 익었느냐고 한마디씩 해댔다. 눈치를 보아하니 저감이 대봉으로 아직 덜 익었으니 손도 대지 말라는 할아버지 분부가 있으셨는데, 내가 맛있게 먹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속았다는 표정이었다. 이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아직 덜 익어 맛이 떫다는 둥 풋내가 나는 정도라는 둥 핑계를 대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때마침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연로하신 데다 날씨까지 더워 새참으로 막걸리를 드시려던 참이었다. 대문간을 지나시면서 떨어진 감나무 이파리들과 작업자들의 태도를 보아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아셨다. 아니나 다를까 감나무를 앞뒤로 자세히 살펴보시던 할아버지께서 화를 많이 내셨다. 덜 익었으니 따먹지 말라던 감들이 많이 없어져서 손이 닿는 곳 한쪽이 휑해졌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감나무를 애지중지 가꾸던 손주녀석이 몇 년 만에 추석 성묘하러 온다던 참이었기에 실망이 더 크신 것 같다. 인부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화나신 할아버지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는 마치 누군가가 따먹으라고 했다는 듯한 핑계라도 대고 싶은지 거실 쪽을 가리켰다.
거실에 누가 와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인부들에게 새참을 안 주실 심산이었다. 그러나 단감을 따먹는 것이 새참을 먹는 것 보다 더 든든하며 비용으로 계산해도 더 나간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화가 나신 어투로 내일 새참까지도 먹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셨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치솟던 울화가 모두 녹아 내렸다. 조금 전 모든 일이 손주를 생각했기에 일어났던 것인데, 그 주인공이 눈앞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예정보다 일주일 정도나 일찍 왔으므로 아직 공사도 안 끝난 상태이고, 손님맞이 준비가 안 되어있어 어수선한 자체가 미안한 마음이다.
방금 전까지 감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신 할아버지는 잠시 망설이셨다. 이 감이 덜 익어서 아직은 먹을 시기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러나 이 감들이 내가심은 나무에서 열린 것들이고, 내가 따다가 내가 먹는데 조금 덜 익었다고 별 대수랴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밖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내가 따먹은 감이니 자기도 따먹을 권리가 있다는 듯한 행동은 어딘지 서운한 생각이 든다. 같은 감나무를 두고 주위에 둘러 싼 사람들과 환경이 같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여건에 따라 감을 따는 조건은 다른 것이다.
감나무가 존재하는 위치와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아마 우리의 일상생활도 이렇게 복잡한 얽힘 속에서 이어져 가고 있을 것이다. 누가 내 감나무에 손을 댈 수 있는가. 자기중심적 판단으로 남의 감나무에 손을 대는 것은 감나무 주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인간사 세상살이에서 남의 인생에 손을 대는 것을 잘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개개인은 각자의 다른 인격과 인생목적을 가진 고유 객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때는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내 소유의 감나무에 손을 댄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을 손대는 것과 같다. 남의 인생을 논할 때는 최소한 그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는 승낙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대체의 인생 설계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남의 인생은 감나무에서 감 하나를 따듯이 그렇게 쉽게 결정지을 일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계획을 감안하여 심사숙고한 후 판단하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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