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두 말 해주세요
“형님, 떡 해요?”
“아니! 떡 먹을 사람도 없어서 안 하는데...”
“그래요? 그럼 우리 떡 5k만 해 주세요.”
떡을 안 한다는데도 꼭 자기네 떡을 해 달라는 투의 말이다.
“떡을 5k나?”
“쌀이랑 떡 하는 값이랑 다 드릴게요.”
“누가 돈이 문제래?”
“그러니까 해 주세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이잖아요.”
“응? 알았어. 언제 올건데.”
“전날 저녁에 갈게요. 그리고 설날 아침 일찍 올라올 거예요.”
“... 그래. 알았어.”
멀리서 사는 막내동서가 하는 소리다. 떡을 먹을 사람도 없고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굳이 자기네를 위하여 해 달라는데 안 해줄 수도 없어 영 찜찜하다. 그것이 다 사람 사는 정이라나 뭐라나. 어느 누가 조금 더 수고하면 어느 누가 좀 더 편한 것이 세상이치란다. 그렇게 말하는 데 일일이 따지는 게 어찌 낯설어 보인다.
계획에도 없던 떡을 하려니 한 가지 일이 더 늘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며느리에게 시킬 수도 없어 혼자 하여야 한다. 뒤주에서 쌀을 두 말이나 꺼내어 담근다. 정부에서야 무게 단위를 계량법에 따라 쓰라고 하였지만 어디 촌에서야 그리 쉬운 일이던가. 아직도 모두가 다들 되나 말로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떡을 하는 경우는 한 말 단위로 품삯을 받고 있으니 5k를 달아서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아이고!”
움직일 때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긴 나이가 벌써 78이니 이제는 할머니소리 들을 때도 되었다. 더구나 촌에서 밭으로 논으로 일만 골라서 다닌 덕분에 몸도 많이 망가지고 기력은 쇠 할대로 쇠해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혼자서 떡쌀을 들마시고1) 담그려고 하니 여간 무리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버텨 온 것만 해도 신기할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가 보다. 아니면 불로장생 명약을 감춰두고 나 혼자서 먹는 줄 아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죽는 소리를 해도 며느리는 도와줄 눈치가 안 보인다. 그러기에 애초에 떡을 못해 준다고 딱 잡아떼라고 해도 말도 듣지 않는다고 핀잔이나 들을 것이 뻔하다. 늙은 시어머니나 젊은 며느리나 아예 모르는 체 하는 게 낫다는 심산이다.
막내 동서는 이날 이때까지 제사상에 올리라고 쇠고기 한 근을 떼어2) 온 일이 없고, 생선이나 과일을 사들고 온 일도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 무슨 얘기가 나와도 혹시 중복되게 사오면 그게 다 낭비라고 말하는 입이 얄미울 정도다. 그러는 자기가 무슨 손님인 양 음식상을 앉아서 받고, 안방 마님인양 물리기가3) 일쑤였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봉투 하나를 내밀곤 하였다. 밥값이며 음식값 그리고 밥을 앉아서 먹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돌아갈 때는 아쉬운 애교작전을 떤다.
“형님! 작년 농사는 전국적으로 풍년이라던데 여기도 잘 됐지요?”
“그래? 풍년이래? 우리는 물에 잠겨서 난리났었잖아. 왜! 쌀이 없어?”
“예. 찹쌀 좀 주실래요?”
우리 농사는 잘 안됐다는데도 찹쌀을 달라고 하는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게 보통 쌀이 아녀. 고지4) 먹은 쌀여.”
“그럼 더 맛있어요? 유기농하고는 다른 것인가요?”
“아직 고지도 몰라? 뭐 그런 게 있어.”
“...”
“콩은?”
“...”
“깨도 줄까?”
“주시면 저야 고맙죠.”
“언제는 안 가져간 듯이 그래?”
"..."
“김치는 있지?”
“김치도 새 식구가 하나 들어오니 훨씬 많이 먹네요. 깻잎 김치도 있어요?”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
“형님. 많이 아프셔요? 이제 일 좀 그만 하세요. 새파란 며느리들 있잖아요.”
“며느리가 우리 집에 일하러 왔나? 뭐든지 같이 해야지.”
“하긴 그러네요. 저도 며느리에게 일을 잘 안 시키거든요. 촌에서 난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
“된장도 좀 줘?”
“예. 고추장도 사 먹는 것은 맛이 없어요. 다 수입 고추로 만들어서...”
“근데 이것들을 어디다 싣지?”
“걱정마세요. 우리 차는 12인승이라 아주 커요.”
“참! 떡 가져가야지. 하마터면 깜빡했네.”
“떡 5k가 이만큼이에요?”
“아니! 5k가 아녀. 두 말여.”
“5k만 하시지. 저는 5k 쌀값만 준비했는데.”
“응. 됐어. 내가 어떻게 하나하나 다 계산해서 받겠어? 쌀값도 나둬.”
“쌀도 산지가 싸지요? 도시는 물가가 굉장히 비싸요. 떡 하는 것도 그래요. 품삯은 고사하고 어디서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형님 미안해요.”
“식구도 없는데 떡 두 말을 언제 다 먹는댜.”
견디다 못해 곁에서 듣고 있던 며느리가 한마디 하고 나선다.
“먹기는 누가 다 먹어요. 이제는 떡 장사라도 하려나 봅니다. 아니면 생색내고 불우이웃 돕기를 하든지.”
“아서라. 내가 조금만 더 움직이면 다 좋아하잖아.”
“그럼요. 누가 뭐랩니까. 도시 살아 맘 편한 50먹은 누구 더 편하려니 여러 사람 고생해서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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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고 나른다든지 푸고 옮기는 등 다루는 모든 일을 통틀어 말하는 방언
2) 정육점 가게 이전에 소나 돼지를 잡아서 원하는 만큼 값을 계산하고 사오던 거래방식에서 유래된 용어.
3) 양반이 밥을 먹고 난 후 상을 문 쪽으로 밀어 놓아 하인이 들고 나가도록 신호를 보내는 행동,
4) 소작인이 내년 농사 후에 갚기로 하고 미리 얻어다 먹는 방식의 임차농업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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