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소설, 꽁트, 동화

60 조금 넘었는데 잘 죽었대요

꿈꾸는 세상살이 2007. 2. 27. 06:49

잘 죽었대요.


“너 죽는다.”

“그래, 죽여라 죽여.”

 

술만 먹으면 항상 다투고 싸우기 일쑤인 사람이 있었다. 사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그렇게 했었다.

걸핏하면 재떨이가 건너가고, 툭하면 전화기가 날아다녔다. 부부는 나이도 지긋하였다. 이미 60이 넘은 지도 오래전 일이다. 그럼에도 각자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술을 먹고 내 정신이 아니어서 그랬었나 봐. 미안하다.”

“됐어. 언제는 안 그랬나? 항상 술 먹고 그래서 잘 모른다지?”

“아니야. 정말이야. 잘 알잖아. 내가 어제도 술을 먹고 왔었다는 거.”

“알지. 누가 모른데? 안다고. 말 안 해도 안다고.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데.”

 

술을 안 먹었을 때는 부인을 업고 다니고, 때리는 것은 고사하고 쳐다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위해준다는 그 사람이었지만 술만 먹으면 문제가 되었다. 술을 먹고 온 날은 항상 고함소리가 나고, 뭔가가 우당탕탕 소동이 일어난 후 하루가 마감되었다.

그런 삶에서 하루가 조용하려면 답은 하나 남편이 술을 먹지 않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남편도 그것을 알기는 하는지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는 말은 곧잘 하였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알면서 속고, 정말 그럴까 하면서 속고 또 그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남편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부인은 남편과 마주치기가 싫었다. 뭔가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아침에 돌아오는 직업을 가졌다. 부인으로서는 천만 다행이었다. 낮에 직업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처럼 하루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밤에는 자기가 일한다고 밖에 있었는데, 겨우 일마치고 집에 오니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나가 버렸다. 남편은 그것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덕분에 부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속상하게 싸우지 않아도 되고, 물건 부수고 몸 다치지 않아서 좋고, 뭣보다도 술을 말로 깨는 그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밖에서 일하는 노인의 몸이 피곤한 것은 참을 수 있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면 일이 즐거웠고,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사명이라고 여기니 당연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집에서 죽지 않았으니 아무리 부인이라도 나중에 전해 듣게 되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나이가 아직 70도 안됐다면서?”

“나이 70이면 뭐해! 사람노릇을 해야지.”

“사람 노릇? 여자가 남자를 칼로 찔렀다면서 사람노릇은 무슨 말이야?”

“웬 말 같지 않은 소리. 얼마나 얌전한 여잔데 칼로 찔러.”

“아니야? 그럼 그게 무슨 말이야?”

“칼이야 남자가 술만 먹으면 들고 왔지. 죽인다고. 야간에 경비서다가 혼자 목을 맸대.”

“혹시 남자있었던 거 아니고?”

“어디 가서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 얼마나 바르고 착한 사람인데.”

“그럼 그게 의처증인가? 싸울 때 들으면 어디 갔었냐 어떤 놈이냐 어떻고 하던데.”

“그러니 잘 죽었다지.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아무렴 내가 남의 일이라서 그런 게 아냐.”

“그럼 의처증에, 알코올 중독에, 허구한 날 싸움에, 그 말도 맞기는 하겠네.”

 

그 사건은 조용하던 아파트에서 한동안 부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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