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몇이우? (폐차장 1)
“어서 오시오.”
“안녕하세요?”
“아, 그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반갑다는 말씀 들으니 좀 쑥스럽군요.”
“그렇지요? 안녕하냐고 물으니 그것도 안 어울리는데요.”
폐차장에서 만난 차들이 뭐라고 뭐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가 먼저 아는 체를 합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찹지요?”
이에 오늘 들어온 레저용 차량은 아무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공손히 대답을 합니다.
“그러네요. 벌써 3월인데 웬 눈이 오고 바람도 이렇게 세게 부는지...”
먼저 온 승용차는 숨이 차는지 뜸을 들이며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이것 좀 잠시만 들어 줄래요? 숨이나 좀 쉬고 삽시다.”
“조금만요. 그런데 이것들이 무거워서 대체 꿈적도 안하네요.”
“무겁지요? 어제 눈 오던 날 하루에 이렇게 많이 쌓인 거라우.”
“조심들 안 하고 이게 뭡니까. 하루를 못 참아가지고 목숨을 끊고...근데 여기 오신지 오래되셨나요?”
“나요? 벌써 열흘도 넘었는데 영 소식이 없네요.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픈데 주인은 어디서 뭘 하는지, 원.”
승용차는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차들이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위에 있으니 고개를 들어 쳐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뭐를 어떻게 해 달라고 할 수도, 누구하고 얘기를 나눌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마침 오늘은 딱 한 대, 그것도 자신의 옆으로 들어 온 레저용 차량이 내심 반가웠나 봅니다.
“보아하니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올해 몇이우?”
“겨우 재주를 부릴 만합니다.”
“그럼 열 살? 나는 열다섯이오.”
레저용 차량은 깜짝 놀랐습니다. 사회에서는 자기가 그래도 제법 나이든 축에 들어갔었는데, 여기 와보니 그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형님은 어쩌다 이런 댈 오셨습니까?”
“아! 나는 이제 늙어서 힘을 못 써서 왔지. 어디 좋은데 놀러 가자고 해도 온 몸이 쑤셔서 마음대로 못가. 마음은 나서는데 도대체 몸이 말을 들어야지.”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마치 대형님의 연륜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온 세상을 두루 구경하였다니 부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전에는 좋은 시절도 있었을 것 아녜요?”
“물론 있었지. 봄이면 꽃구경도 가고,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그늘도 가고...”
“넓은 바다도 가시고요?”
“그럼! 그렇고 말고. 좋은 데는 다 가봤지. 아마도 안 가본 데는 없을 걸.”
“부럽네요. 저는 제 명대로 살지도 못했어요.”
“아니, 명대로 못 살고 오는 차도 있어?”
레차는 자신을 생각만 해도 분해서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 이것은 자기 잘못이 아닌 순전히 차 주인들의 잘못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리는 술은 왜 먹어가지고 이런 고생을 시키는지 화가 납니다. 레차의 얼굴이 상기되고 눈이 충혈되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용케 참아냅니다.
“예. 조심조심 겨우 겨우 가고 있는데 누가 앞에서 멱살을 잡더니 그만 박치기를 해버리더라고요.”
“박치기를? 지단처럼 갑자기?”
“예, 그렇다니까요. 굉장히 센 놈이었어요. 제 딴에는 잘 간다고 갔었는데 그놈이 워낙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어쩔 방법이 없었다니까요.”
“혹시 그놈 주인이 술을 먹었던가?”
“술요? 그거야 우리 주인도 먹었지요. 그래서 살살 옆 차 눈치를 보면서 가고 있는데 그놈이 인정사정없이 들이대는 바람에 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요. 대형님.”
“애고 불쌍한지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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