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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끼가 어디 갔어요?

꿈꾸는 세상살이 2006. 10. 16. 06:35
 

토끼가 어디 갔어요?

                                                                                                  한 호철

며칠 전 딸아이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평상시 뛰어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치고는 큰 맘 먹은 것일 게고, 예삿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더니 대뜸 하는 말이 뜬금없다. 

아빠. 토끼 좋아해요? 토끼.

갑자기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하여야 할 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토끼를 사서 기르자는 것인지, 아니면 토끼에 관해서 질문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을 무작정 늦출 수도 없는 것이라서 어정쩡한 답을 하고 말았다.

무슨 토끼? 집토끼? 산토끼?

일단 이렇게 답하고 나면 원하는 정답을 찾는 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아이의 대답이 바빠졌다.

내가 학교에 갔다 오는데, 요 앞 신호등 있는데 밭고랑에 토끼가 있어서 박제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진짜 살아있는 거여요.

아이의 들떠있는 마음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진짜? 살아있어? 토끼가 왜 거기 있지?

그런데 내가 가서 살아있는지 만져 봐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아닌데, 토끼는 잡으려고 하면 막 뛰어다녀서 잡기가 어려운데.

아니에요. 처음에는 죽었는지 하다가, 박제인줄 알고 내가 만져보았다니까.

토끼를 누가 박제로 만드니. 박물관도 아니고.

그러니까 누가 박제라고 했어요?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만져보았더니 살아있더라니까. 봐요. 여기 살아 있잖아.

얼른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느새 찍었는지 사진을 보여준다.

아이가 말하는 그 신호등과 짐작이 가는 밭은 아예 딱 붙어있고, 거기서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불과 30초 거리다. 아파트 입구에서 집까지 해 보아도 겨우 1분이면 족할 텐데 그사이를 못 참고 사진을 찍어 온 것이었다.

어! 정말 살아있나 보다.

그런데 내가 토끼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어떤 할머니가 나보고 이 토끼를 갖고 싶으면 가져가라는 거예요. 자기가 기르던 것인데 여기 밭에다 갔다 놨으니 토끼를 좋아하면 가져다 기르든지, 아니면 필요하면 잡아서 약을 하든지, 알아서 하고 싶은 데로 하라는 거여요. 

그래? 그럼 가서 가져오자. 토끼로 약을 하는데.

토끼로 약을 해요? 토끼는 원래 털을 쓰는 것 아닌가?

얘 좀 봐. 토끼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나봐. 토끼는 원래 털을 쓰는 것도 있고, 잡아서 고기로 먹는 것도 있고 여러 종류야. 옛날 촌에서는 약으로 쓰고, 가죽은 귀마개로 만들고 그랬었는데.

가죽으로 어떻게 귀마개를 해? 가죽은 원래 뻣뻣하잖아요. 그것을 잘라서 귀속에 넣어요?

아니, 그런게 아니지. 귀속에다 넣어서 소리를 차단하는 귀마개가 아니라, 귀 밖에다 대는 귀가 춥지 말라고 하는 귀마개야.

그럼, 귀 덮개네?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귀 덮개가 되겠지, 그러나 바람을 막아 준다고 생각하면 귀마개도 되는 거야.

짧은 시간 동안 토끼에 관한 전반적인 교육이 끝나자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런데 그 토끼가 지금도 있을까?

모르지.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있겠어?

아니, 아직 얼마 안 지났어. 지금도 있을꺼야.

그 할머니가 다시 가져갔을지도 모르잖아.

그 할머니께서는 나보고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했는데 다시 가져가겠어요?

그럼 지금이라도 빨리 가보자. 가서 없으면 그만이지 뭐.

잘 길러서 아픈데 약이라도 해 먹자. 그런데 어디서 기르지?

왜? 너는 아파트에서 병아리도 잘 길렀잖아.

그때는 병아리였고, 지금은 토끼가 훨씬 크잖아요.

크고 작고가 문제냐? 기르면 기르는 것이지. 그보다 금방 약으로 쓸거니까 문제없어.

가려면 빨리 가봐. 지금 해도 지고 어두워지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가 옆에서 거들지 않았다면 둘의 대화가 언제 끝이 나고, 토끼는 언제 가지러 갈지 도대체가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토끼를 잡은 두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토끼는 양파 망 속에 들어가서 쭈그리고 앉은 채로 움직이는 기색이 없었다.

그런데 이 토끼가 왜 꿈쩍도 안하지? 원래 개와 토끼는 앙숙이라던데 개하고도 친하네.

어떤데 그렇게 친해?

글쎄 토끼가 앉아있는 바로 코앞에 마주 앉아서 턱을 괴고 쳐다보고 있잖아요.  

그래? 아직 강아지라서 친구삼아 놀고 있었던 모양이지.

아니에요. 강아지가 아니라 어느 정도 큰 중개였어요.

그 참 이상하네. 개와 토끼사이는 서로 쫒고 쫒기는 게 원칙인데. 뭔가 코드가 안 맞는 거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앉아서 쳐다보고 있었다니까요. 내가 가니까 그 개가 먼저 반갑다고 나를 마중 나오고, 내가 토끼 있는 데로 가니까 자기도 따라서 가더니 다시 처음 있던 자리로 가서 쭈그리고 앉았어요. 그리고 나와 토끼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던데요.

개가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고, 장난도 안치고 그랬단 말이지?

글쎄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믿어 줄 거예요.

알았어 알았다고. 믿으면 되잖아. 그런데 이상하기는 이상하다. 개도 그렇지만 토끼가 도망가지도 않고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이상하단 말이야.

아이구, 됐네요. 자꾸 그런 얘기만 하면 뭐해요. 사실이 그런데.

그나저나 토끼가 먹을 밥도 준비는 해 왔겠지?

그럼요. 오면서 아카시아 잎을 따 왔어요.

다행이군. 토끼는 원래 습기를 싫어하니까 조심해야 돼.

물은 언제 줘요?

얘 봐. 금방도 습기를 조심하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물은 언제 주느냐고요.

안 돼. 물은 절대로 주면 안 된다니까.

아니 물을 안 먹는 짐승이 어디 있어요. 자기가 뭐 선인장 자손인가?

하여튼 물은 주지마라. 그리고 토끼가 뭐를 좋아하는지는 네가 잘 보는 인터넷에 들어가서 알아봐라.

뭐든지 나보고 하라고 할 때는 인터넷 찾아보라고 하시지요?

그럼. 어차피 네가 기를 거니까 네가 자세히 알고 있어야지.

그런데 토끼집이 좀 작은 것 아닌가?

벌써 토끼는 플라스틱 시장바구니 안에 옮겨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임시 거처인 시장바구니는 마음대로 활동을 할 공간이 없어 보였고, 겨우 옆으로 돌아앉을 정도의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어! 움직인다.

아니 살아있는 토끼가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 처음 움직인 것이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아직 밥도 안 먹는 것을 보니 낯을 가리나보다.

정말 처음 움직인 거야? 아직까지 꿈쩍도 안했단 말이야?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픈 게 틀림없네. 아니면 토끼가 원래 부지런한 동물이라 가만히 붙어있질 못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병원에 가보아야 할까요?

아니, 지금 막 가져온 토끼 한 마리 가지고 이 밤에 병원에 가자는 것이야?

누가 지금이래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자 가만히 놔둬. 토끼가 낯선 곳에 잡혀 와서,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으니 긴장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니까. 이제 문 닫고 조용히 내버려 둬.

베란다에 놓아 둔 시장바구니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식구들은 거실에 앉아서도 모두 그 쪽만 쳐다보았다. 혹시나 토끼가 안정이 될까봐 거실의 전등까지도 미리 꺼 줬지만 아직도 주위가 다 보일 정도로 훤했다. 그리 늦지 않는 시간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불빛이 비쳐오고 있었다.

그런 식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끼는 여전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딸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가서 토끼를 찾았다. 그러나 시장바구니 속에는 토끼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벌써부터 주방에서는 아침 준비하는 소리가 분주히 들리고 있었다. 

어! 토끼가 어디로 갔지?

가긴 어디를 가. 거기에 있지.

없어요. 없어졌어요.

아니야. 나도 아침에 봤는데 거기 있던데.

예? 있었어요? 그럼 바구니를 뛰어넘어서 나갔나? 아니! 토끼가 죽어 있어요.

그래. 나도 죽어있는 것을 보았단다.

자리를 옮겨서 스트레스 받아서 죽었나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그대로 두어라. 그 토끼는 처음부터 아팠던 것이 틀림없어.

그럼 그 할머니는 토끼가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누가 그렇대. 토끼가 아팠다고 했지.

딸아이의 얼굴에 어둠이 몰려 왔다. 왠지 자기가 토끼의 죽음을 재촉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돌이켜 생각하니 어제 저녁 물끄러미 쳐다보던 개가 마치 토끼의 임종을 지키려던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은 사고로 느끼지만 동물들은 영감으로 느낀다던데 그런 줄도 모르고 마지막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그 자리에 갖다 놓으면 다시 살아날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니.

저도 알아요. 그러나 토끼를 살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처음의 제자리로 되돌리고 싶어서 그렇지요.

괜찮아.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잖아. 너는 토끼를 잘 키워보려고 했으니 잘한 일이지. 토끼도 네 마음을 이해 할 거야.

감겨져 있는 토끼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나를 살리지 못했나요.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단 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애원하며 말했건만 너무 합니다 하는 말들이 온 집안에 들려오는 듯하였다. 

토끼에게나 개에게나 미안한 마음에 어찌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거기다가 먹을 것도 아닌 죽은 토끼 한 마리조차도 아파트에서는 뒤처리를 하는 것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야. 그렇게 넋 놓고 있지 말고 토끼를 어떻게 처리할지나 잘 생각해봐라.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하렴. 가져 올 때도 네가 가져오지 않았니?

토끼를 묻어주려면 흙이 있는 공원 옆의 밭까지 가야하는데 어쩌지요?

그것도 네가 알아서 하렴.

딸아이는 아무 말 없이 꽃삽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2005.08.04

출처 : 한국문예연구문학회
글쓴이 : hch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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