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봄이면 됐지 쑥이나 냉이를 따져 무엇하리

꿈꾸는 세상살이 2007. 3. 2. 09:58
 

 

 

그렇다면 쑥대신 냉이다.


입춘이 지났다고 하더니 봄이 오기는 오는가 싶다. 2월10일. 예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온이 워낙 따뜻하니 봄으로 착각을 해본다. 어쩌면 겨울이 있어야 할 때 멈칫하는 사이에 그만 자리를 빼앗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쪽만 훤히 터진 곳에 비탈이 있다. 이 동쪽도 바람을 막기 위함인지 새로 난 신작로가 가로 질러 가고 있다. 이제 사방에 병풍을 둘러놓은 듯 아늑한 곳이 되었다. 여기가 바로 진주 소씨의 제실이 있는 곳이다.

다랑논을 까뭉개 내리니 넓은 논이 생기기는 하였지만, 그만큼 높다란 언덕이 생겨났다. 이 언덕이 아침 햇살을 받고 나더니 하루의 양기를 발산하는 명당으로 변한 것이다. 죽은 듯 조용한 흙에서 생기가 뿜어져 나오니 쑥이며 달래가 무성한 생명의 언덕이 되었다. 줄기도 굵고 잎도 넓적한 나물이 지천으로 깔린 것으로 보아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는 명당임에 틀림없다.

날씨가 포근하여 쑥을 캐러 나갔다. 지금이 2월인데 아무렴 빠르긴 빠르다고 생각하면서 허실삼아 나가본다. 아직 설날도 돌아오지 않았건만 봄기운이 물씬 나는 것이 바람은 불어도 그리 차갑지가 않다. 여기저기 파란 새싹들이 벌써 돋아나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성격도 모르지만 그래도 파란 풀임은 분명하다.


이들은 아마도 봄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라고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비바람이 불어도 단 한 발자욱도 떠나지 못하고 꼿꼿이 선채로 고향을 지켜냈을 것이다. 무덥던 어느 날, 여름이라는 불청객이 오면서 그만 기력을 잃었고, 쇠잔한 몸은 찬바람이 불면서 정신이 혼미해졌을 것이다. 이역의 중금속 황사도, 뜨거운 불볕도, 지독한 자외선도, 몸을 녹여내는 장마도 모두 고스란히 받아내며 버티던 생명이었다. 그러나 한낱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넋을 잃고, 그 질긴 끈을 놓고 말았다. 비록 짧은 기간동안이었지만 그렇게 강렬한 삶을 살았기에 지금 다시 환생한 것이리라. 작년에 고추 섰던 바로 그 자리로, 서슬 퍼런 동장군마저 따돌리고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가 기다리던 쑥이 없었다. 양지바른 언덕 쑥밭에 쑥이 없었다. 다만 나를 맞는 것은 이름모를 잡초뿐이다. 봄나물 캐러 왔다가 그냥 갈순 없어 나물대신 봄을 한 바구니 담아본다. 쑥이면 어떻고 냉이면 어떠랴. 봄나물이면 좋고 그냥 봄이면 좋은 것을. 바구니 가득 담긴 봄냉이는 겨우 한 바구니로도 푸짐하다. 설도 되기 전에 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타임머신을 타고 작년 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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