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동창회장 선거 날

꿈꾸는 세상살이 2007. 3. 6. 10:58
 

동창회장 선거 날


“야! 동창회에 잘 나가냐?”

“아니 요즘 잘 못가는데, 너는?”

“나도 많이 못 갔어.”

내가 동창회에 못 간 것은 미안한 마음을 표하지만, 상대방이 동창회에 못 갔다고 하는 데마저 나무라는 것도 좀 멋쩍어 조심한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괜찮아. 어떻게 다 참석하냐?”

“야! 너 못 나갔다고 못 나간 것을 당연시 하냐?”

따지는 폼이 마치 동창회는 반드시 참석하여야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도 참석률이 절반에 그치니 그게 바로 세상일 아닌가.

“알았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잘 나가도록 하마.”

“야! 내가 많이 못 갔다고 한 것은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냐.”

국어시간도 아닌데 뭘 그리 일일이 따지는지 말대꾸하면 길어질 것 같다.

“그럼 이번에 참석하였다는 말이냐.”

얼마 만에 참석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의기양양하다.

“그렇지. 참석했고말고.”

“많이 왔어?”

“그래. 너만 빼고 다 왔더라.”

“얼마나?”

“한 30명?”

“야 정말 많이 왔구나. 근래 처음인데.”

“안 들어오고 밖에서 빙빙 도는 애들까지 합하면 더 될걸?”

“빙빙 돌아? 왜? 자리가 좁아서?”

“으이그. 바보야. 동창회장 선거 날이잖아.”

선거 날이라고 밖에서 빙빙 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회장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게 뭐 대수랴 싶다.

“없는데 회장 시키면 무효라고 일부러 안 들어 온거지.”

“그래? 00는 회장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왜 너는 안 왔냐? 회장 시키려고 맘먹었는데.”

“나? 왜 나를 회장 시켜?”

“왜가 어딨어. 동창들이 하라고 시키면 시키는 거지.”

“그래서 누가 됐어?”

“세상에, 만장일치로 00가 됐다.”

“응? 00?”

“그래. 최초의 여자 동창회장이 탄생한거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여자 동창회장을 뽑았다는 얘기는 진짜 듣는 중 처음이었다. 여자들이 키가 작아서, 아니면 허리가 가늘어서 안 시켜줬다면 그것도 틀린 말이다. 아니면 나이가 적어서, 혹은 얼굴이 안 바쳐줘서 그랬었다면 그것도 맞지 않는 말이다. 요즘 여자들은 기동성도 좋고 경제력도 좋다.

“잘 됐네. 이제부터는 여자들이 많이 나오겠는데.”

“야야. 말도마라. 동창회장 수락조건이 뭔지 아니?”

“글쎄?”

“지금까지 했던 총무, 재무, 서기 모두가 그대로 유임이야. 자기가 하는 한.”

“야! 멋있다!”

“멋있지? 멋있지? 대신 이제 맛 좀 봐라. 회장이 임원들 얼마나 불러댈지 아냐?”

“야! 여자들! 이틈에 장기 집권 좀 해라. 그래야 동창회가 잘 돌아가겠다.”

우리는 이렇게 여자 동창회장을 추대하였다. 그리고 넙죽 엎드렸다. 감히 회장님 말씀하실 때는 토를 달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도 그 수가 절반이나 되는데 왜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생각들을 못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제 여자들이 누구처럼 장기집권을 할지 두고 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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