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이쁜 애 이쁜 마음

꿈꾸는 세상살이 2007. 3. 3. 21:57

 

 

 

이쁜 애 이쁜 마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예쁜 사람이 있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이제 나이도 50을 넘었고, 올 봄에는 딸을 시집보낸다고 날짜도 잡았다. 그 사람이 예쁜 애로 변한지는 약 15년 전 일이다.

 

당시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반창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선생님이 직접 지어주신 별명이 바로 이쁜 애였다. 선생님의 말씀은 그 애가 항상 이쁜 짓만 골라서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어찌 예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일마다 보아서 좋은 일, 예쁜 짓이라면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세상에 어느 누가 항상 옳고 예쁜 짓만 골라서 할 수 있겠는가. 일을 하다보면 실수도 있고, 누군가 서운하게 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래도 그 사람은 이쁜 애로 통한다.

 

나는 이 단어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쁜 애라는 기준이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고, 몸매가 예뻐서가 아니라 하는 짓이 예뻐서라면 나는 자신이 없다. 항상 칭찬을 받을 일만 골라서 행하는 것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열 번을 잘하다가 한 번만 잘못해도 욕을 먹는 것이 세상사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체로 이쁜 애라는 단어가 들어맞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우선 그 사람은 여지껏 한 직장을 계속하여 다니고 있다. 남들은 나의 목표를 위하여, 나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직장으로 일부러 찾아다니는 것이 예사지만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뭔가 다른 면을 위하여, 발전을 위하여 조건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반응이다. 그까짓 돈 몇 푼 더 받아서, 직급 하나 더 올라가서 뭐가 달라지느냐는 이론이다. 내가 인정을 받으면 그만큼 해주면 되는 것이고, 나에게 그만큼 대접해주면 인정받을 일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그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상살이가 아주 간단한 이론에 불과하다.

 

정말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부딪쳐서 실행하였다. 이러하고 저러해서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쁜 애는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은 하나도 없고, 안되는 일도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다만 내가 능력이 부족하여 그 일의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그는 역시 이쁜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배려하는 행동은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을 가리지 않으며, 남의 손해는 바로 나의 손해라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그였다.

 

오늘도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나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받지 않는다. 혹시 잘못 걸지 않았는지 걱정을 하면서 다시 호출을 한다. 여전히 아무 소식도 없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도 잠시 후에 전화를 해 주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좋으련만 은근히 화가 치민다. 그런 순간 저 모퉁이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보자마자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화풀이를 하려다가 애써 참으며 물어본다.

문 앞에 도착하여 전화하면 즉시 나오겠다고 하였으니 전화를 받으면 뭐하겠느냐고 대답한다.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래야 괜히 전화요금만 나오지 다른 뭐가 있느냐고 따진다.

소비와 낭비를 구분할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정말 이쁜 애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친구 중에 이런 이쁜 애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