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가 우선이지
아파트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어 아는 체를 하였다. 마침 그곳은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곳이라 뒤따라오는 차량도 없었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거의 없는 조용한 정류장이었다.
차림새로 보면 등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의 등산객들은 이제 하산을 하고 돌아올 준비를 할 오후 시간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미륵산에 간단다. 미륵산이라면 익산 시민이 즐겨 찾는 산이다. 이 산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도 않는다. 거기다가 시내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오가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산이다. 그러기에 어린이부터 노약자까지 모두 찾아다니는 산이다.
이러한 미륵산을 가는 사람이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신었으니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평상복에 간단한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친구가 좀 별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 후 얼마가 지났다. 그 친구와 어떤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일정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그런데 토요일은 제외하고 다른 날은 다 좋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에 간다든지, 집안 식구끼리 지내야 한다든지 하는 말로 일요일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일요일 모임은 참석하지 않으면 되고, 집안 가족의 모임이라면 한 두 번은 이해를 할 거라고 하면서 토요일만은 제외시켜 달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빼고 다른 사람끼리만 추진하라고 하니 그것 또한 난감하였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시간을 요하는 행사는 대체로 토요일을 택하는 것이 보통이지 않는가. 평일은 여러 사람이 참석하기 어려운데다, 토요일은 주 5일제가 실행되면서 그래도 많이 여유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굳이 토요일은 왜 안 되느냐고 물으니 속 시원히 대답은 하지 않으면서도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단체 행동을 하는데 개인의 사정으로 흐트러지는 게 좋으냐고 다그치고, 소수가 다수를 무시해도 되느냐고 윽박지르니 그제서야 대답을 하였다. 토요일은 한 달에 두 번 자원봉사를 가기로 되어있단다. 그 나머지 두 번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가능하면 약속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토요일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친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못 지킬 약속이라면 처음부터 하지를 말고,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면 성실히 실행하라는 것이니 참으로 합당한 말이 아니던가. 무슨 일을 행하더라도 복장과 마음자세를 바로 가지고 행하는 것이 그 일의 성과를 높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니 다른 할 말이 없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얼마 전 아파트 앞에서 미륵산을 가던 복장이 생각난 것이다. 해발 440m의 높지 않은 산, 시내에 있는 산을 가는데 등산복장을 갖추었던 것은 남에게 표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뿐만 아니라 옆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고, 일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고 느껴졌다. 더구나 자원봉사를 행함에 있어서는 혹시라도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리라 생각되었다. 자기가 할 일에 철저한 준비를 하는 마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다른 일보다 자원봉사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존경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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