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공원에서 달콤한 빵 냄새가 난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3. 24. 13:24
 

공원에서 달콤한 빵 냄새가 난다.


이른 아침 운동하는 산길에서 달콤한 빵 냄새가 났다. 500원 짜리 단팥빵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부드러운 케이크 빵인 것 같았다. 어쩌면 카스테라 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빵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그 달콤한 냄새는 나의 감각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빵 냄새를 맡고 있으려니 선친이 생각난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영양제와 진통제를 맞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그동안은 아무것도 잡수지 못했으니 몹시 배가 고프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를 지내고 난 뒤 한동안 빵을 사 날랐던 기억이 있다. 많은 양도 아니고 하루에 꼭 한 개씩 사다 날랐었다. 특별히 정해놓고 사는 제품도 없었지만 앙꼬 빵이든 카스테라든 구별하지 않았다. 선친께서는 특별히 빵을 좋아하지 않으셨기에 빵을 고르는 기준은 순전히 내가 먹고 싶은 빵이면 되었다. 말하자면 젯밥은 그냥 내가 편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빵을 사 나르면서 산소를 둘러보았고, 점차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핑계 저런 핑계로 정을 끊어내고 있었다.

이 아침에 빵 냄새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공원의 숲 속이라 빵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침 일찍 빵 배달차가 지나간 것도 아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은 그냥 자신을 위해서,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챙겨주는 사람들로 모두가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다.

바람에 실려 오는 부드러운 우유빵 냄새는 포동한 여인네가 지나갈 때  풍겨져 왔다. 그런가 하면 달콤한 팥 앙꼬빵 냄새는 인심 좋고 수더분하게 생긴 아저씨가 지나갈 때 나는 냄새였다. 또 계란 노른자와 버터가 듬뿍 들어있는 식빵 냄새는 마치 천하장사를 닮은 근육질의 사내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칠 때마다 각기 다른 냄새가 나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바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보면 새내기들의 상큼한 솔빵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항상 보호자가 따라 다녔다. 그들은 깡마르고 풀기 밭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에게서는 농익은 스틱빵 냄새가 났다.

그 빵은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누가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빵이다. 겉에는 언제 칠해졌는지도 모르게 메말라버린 기름이 자신도 한때는 멋진 기름이었다는 듯이 흉내만 내고 있다. 겉에 비해 속살은 부드럽지만 그래도 여느 빵보다는 훨씬 건조하다. 게다가 특별히 많은 섬유질을 가진 것도 아니건만 맛도 질기다.

그러나 스틱빵은 그 모양만큼이나 긴 세월을 살아온 빵이다. 내면에 켜켜이 쌓인 사연들은 줄줄이 꿰인 인간사다. 사랑으로 포장된 미움이 있고, 삶으로 인한 고뇌가 있다. 죽음이 두려워 죽임을 택하는 것과 고독이 무서워 외로움을 선택한 애환이 들어있다. 그 한 줌을 떼어내면 역사가 되고, 또 한 줌을 떼어내면 문화가 된다. 그 속에 내가 있고, 그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스틱빵은 볼품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내는 빵이다.

이른 아침 공원에 가보는 맛있는 빵 냄새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들의 고된 삶이 땀에 젖어 만들어내는 냄새다. 그 땀 속에는 그들의 하루가 배어있다. 달콤한 빵 냄새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사람냄새였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작 꽁지내리다  (0) 2007.04.16
까치집! 이렇게 지어졌다.  (0) 2007.04.04
자원봉사가 우선이지  (0) 2007.03.22
달이 밝다  (0) 2007.03.07
편지를 받긴 받았는데  (0) 2007.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