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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갈망하는 사람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5. 9. 19:47
 

생을 갈망하는 사람들!


큰 오빠는 환갑잔치를 하였다. 요즘에는 칠순이나 팔순잔치도 생략하는 추세인데, 보기 드물게 온 식구가 힘을 더해 환갑잔치를 치러주었다. 우리 집안은 현대인답지 않게 수명이 짧은 편인데, 큰 오빠는 아주 장수한 축에 들어가므로 축하할 만하였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나이 45세 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슬하에 8남매를 두셨다. 그 뒤에 제일먼저 막내 오빠가 갓 40을 넘긴 후 신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암을 앓으셨는데 막내 오빠마저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시니, 이것은 마치 우리 집안의 내력을 알려주는 전령과도 같았다.

그러던 중 둘째 오빠가 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시름시름 앓는 기색도 없이 갑자기 돌아가신 작은 오빠 역시 나이 50을 넘기지 못하고 말았다. 몸 한 구석이 아프고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벌써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퍼져버린 때늦은 발견이었다.

집안의 기둥들이 모두 간암 앞에 맥을 못 추게 되자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간암 집안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부정하여 바뀔 것도 아닌 불가항력이었다. 이렇게 불의의 사고를 당할 때마다 가슴조리며, 조용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죽음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와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큰 오빠께서 환갑을 맞았다. 수명 40대 집안에서 60대가 탄생한 것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은 환갑이든 진갑이든 상관없이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한 기쁨이고, 사슬의 고리를 끊은 것 같은 즐거움으로 여기고 싶었을 것이다. 당사자 나름으로는 기쁨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문을 열어주는 수호천사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의 끈을 쥐어주고자 했던 큰 오빠는 환갑잔치를 한 다음해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 단명 집안의 굴레였단 말인가.

예전에 어른들이 환갑잔치를 하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던 느낌이 잊혀지기도 전에 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 제일 막내인 여동생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이제는 남은 식구들도 모두 그러려니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언제 누가 어떤 병으로 먼저 떠나갈지 그냥 서로 쳐다만 보는 식이었다.


큰 오빠는 암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모든 것을 체념하였었다. 어떻게 수술이라도 해보자고 권하는 사람에게,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굳이 이것저것 해보고 죽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정이나 수술이 싫으면 항암치료라도 해보고 약이라도 써 보자고 애원하였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하긴 당시 상황이 어떻게 손을 쓰기에도 너무 늦었지만, 단명한 집안에서 그 정도는 아주 오래 산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오빠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죽을병이라면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쓰고 죽을 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남겨놓고 죽어야 한다는 의도였다. 따지기로 말하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는데 까지는 해보는 것이 인생사라고 본다면 서운한 면도 없지 않다.

이제 남아있는 식구들은 4명인데 모두 여자들이다. 다행히도 이들은 모두 나이 50을 넘겼다. 드디어 수명 40대의 벽을 넘은 것인가. 아직도 평균에 비하면 아득하지만 운명의 한 계단을 오른 것 같은 느낌이다.


한 5년 전부터 얼굴색이 검어지고 뭔가가 덕지덕지 솟았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자 큰 병원에 가보라고 떠넘긴다. 그러나 나는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기가 겁이 난다. 가보면 분명히 무슨 말을 할 것인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픈 데는 없는데 그래도 큰 병원에서 정밀진찰을 받아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몸에 이상이 오기는 왔었는지조차 기억에서 희미하다. 죽는 날까지 모른 체 살아야 할지, 미리 알고 마음고생을 하다가 죽어야 할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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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옆집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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