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보리빈대가 간식인가요 주식인가요?

꿈꾸는 세상살이 2007. 6. 2. 07:08

보리빈대를 아시나요?

 

보리빈대를 아시나요? 아니면 밀빈대는 아시나요? 하긴 보리나 밀로 만든 빈대는 굳이 다르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밀로 만든 것은 밀빈대요, 보리로 만든 것은 보리빈대니 내용적으로는 같은 거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 보리빈대를 물어보니 상당수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아는 그룹과 모르는 그룹의 구분이 40대 이하와 50대 이상으로 확연히 구분된 것이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어려운 환경 탓으로 먹거리가 풍성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단어가 되고 만 것이다. 보릿고개라는 말과 함께 고지, 그리고 세경 등 농사와 관련된 단어 사이에 서 빈대는 그냥 잊혀진 단어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보리빈대는 보리가 통통 여물어가던 때, 작년에 준비해 두었던 식량이 다 떨어지면 생기는 간식이었다. 본격적인 보릿고개가 식량으로서의 궁한 시절을 대변하는 말이었다면, 그 시기의 간식을 대변하는 말이 보리빈대일 것이다. 5월 하순, 이제 보리가 익기 시작하면 지긋지긋하던 보릿고개가 막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 좋든 싫든 식량으로서 국민의 생활을 책임질 영양분이 될 것인데, 그에 앞서 푸릇푸릇한 보리 이삭에서 따낸 알맹이를 살짝 구워내어 간식으로 먹는 방법도 있었다.

 

젖은 보리 이삭은 잘 타지도 않지만, 완전히 태워 먹는 것도 아니니 풋기만 가시면 되는 것이었다. 살짝 데치는 정도인 빈대 만들기는 마음만 급할 뿐 손길은 다른 곳에 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삭의 가시가 타고 보리가 한 알 한 알 튀어 나올 정도가 되면 아주 제격인데 그것을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뜨겁다고 하면서도 행여 다른 사람이 집어갈세라 눈치껏 챙기던 이삭이었다.

타고 난 재는 호호 불어서 날리고, 껍질은 손바닥으로 비벼서 조심스레 까불면 먹음직스런 알맹이만 남는데 이것이 바로 보리빈대다. 통통한 보리알은 말랑말랑하면서도 잘 익어있는데다가, 굽는 열을 받아 팽창된 알맹이가 입맛을 다시게 하는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목의 출출함이라는 정말 참기 어려운 유혹을 만들어 내곤 하였다.

 

정신없이 한 입에 털어 넣는 보리빈대는 손은 말할 것도 없이 입술까지도 시커멓게 칠해 놓기 일쑤였다. 아까운 보리를 꺾지 않았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보아도 어른들은 용케도 알아내던 빈대서리다. 배고픔이야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매 한가지였겠지만, 이제 며칠만 참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로 변할 보리를 꺾을 어른들은 없었다. 아이들이라고 보리빈대를 먹지 않아 누렇게 뜨고 금방 황달이라도 날 것처럼 급한 것도 아니었건만, 집 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먹던 것이 보리빈대다. 하긴 아이들이 먹던 빈대가 아까워서 그랬을 어른들이 어디 있었을까. 행여 어른 몰래 먹는다고 서두르다가 잘못하여 화재라도 낼까봐 걱정하는 것이고, 급히 먹다가 체한다고 걱정하던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보리빈대 먹고 체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먹을 것이라고 생기기만 하였으면 뭐든지 먹어 치우던 시절의 보리빈대는 그냥 하나의 간식 그 이상은 아니었다.

 

지금은 보리빈대를 먹는 사람이 없다. 먹기에도 꺼칠하니 좋지 않은데다가 다른 먹을거리가 넘쳐나니 굳이 보리빈대를 찾을 이유가 없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 먹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손이며 입이 더러워지는 불편함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게다가 특히나 일품인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음식에 비해 소화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보리빈대가 사랑받던 이유는, 달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라 무공해 천연 식물성 보리표 빈대가 유일무이한 영양식품 간식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리빈대를 잊었든 말았든, 보리빈대를 먹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올해도 보리는 익어가고 있었다.

 

넓은 들판 가득 누런빛으로 물들이고, 특유의 사삭거리는 스산한 소리를 내던 보리는, 이제 일용할 간식이라는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한 입 가득 떠먹어도 모래알처럼 따로 놀던 보리는 까칠한 가시를 달고 있는 만큼이나 껄끄러운 존재였었다. 어쩌면 식량이라는 자리마저 물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참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를 같이하던 보리는 아직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리를 버려야 하느냐 아니면 다시 불러 들여야 하느냐를 고심하여야하는 것은 역시 껄끄러운 판단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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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보리를 개량하기 위한 운영중인 시범포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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