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잡다한 무엇들

파리화장실! 그 옛날의 기억

꿈꾸는 세상살이 2007. 6. 6. 23:33

 

 

 

 

파리똥! 그 옛날의 기억.


파리가 똥을 싸면 그것은 파리똥이다. 그러면 응가를 하는 장소가 바로 파리 화장실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파리가 응가를 하도록 화장실을 만들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실외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면 파리들은 따뜻한 방으로 찾아들고 여기저기 제 맘대로 옮겨 다니며 더럽히곤 하였었다.

깨끗하지는 않았어도 아직 쓸만한 벽지나 천정 도배지를 가리지 않았고, 점점이 박혀있는 검은 점들이 바로 파리똥에 의해 더렵혀진 자욱들이었다.


보다 못해 파리채를 들고 따라 다니며 잡기도 하고 내 쫒기도 하였지만 요리저리 잘도 피하였다. 당시는 주변에는 파리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많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공해와는 거리가 멀었고, 농약이나 살충제가 적었던 것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파리 잡기를 포기하면 다음은 아예 파리 화장실을 만들어 주는 차례가 기다렸다. 천정의 중간중간에 신문지나 쓰고 버리는 종이를 잘라서 붙여주는 것이다. 마치 가오리연의 꼬리처럼 생긴 기다란 종이는 가로 세로 줄을 맞춰 늘어선다. 그렇게 달아 다니다가 힘이 부친 파리가 앉아 쉴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면 파리도 고맙다는 듯이 찾아가서 놀곤 하였다. 그러나 편안히 쉬다가도 자리를 뜰 때면 반드시 표시를 하고 떠났으니 이른바 파리똥이다.


미물인 파리도 월동을 위하여 방안으로 모여들며, 가을부터 추운 겨울 동안 사람들이 지펴주는 군불로 지내다가 따듯한 봄이 되면 밖으로 나간다. 그동안 잘 지냈노라는 말도 없이, 다음에 돌아올 때는 금은보화가 나는 호박씨를 물어다 준다는 기약도 없이, 벌어진 문틈 사이로 그냥 나가 버린다.

사람들은 조그만 파리를 다 잡지도 못하고 겨울을 보낸다. 얄밉다얄밉다 하면서도 다 없애지 못하고 포기한다. 작심하고 덤비면 집안에 들어온 파리 그 녀석들을 다 못 잡을 이유도 없지만, 그래도 다 잡지 못한 채 새로운 봄을 맞는다. 어쩌면 그것은 못해서라기보다 겨우내 얼어 죽은 사체를 처리하라고 놓아주는 방법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하찮은 곤충이지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만큼만 남겨두고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다시 말하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법칙을 실천한 하나의 행동이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봄이 되면 집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환기도 시킨다. 이때 파리화장실을 걷어내고 원래 도배지 상태로 바로 잡는다. 덕분에 도배지를 더럽히지 않고 봄을 맞을 수 있었다. 없는 살림에 해마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리석지만 얄팍한 꾀를 써서 절약하는 지혜도 엿볼 수 있었다.


파리가 집을 나간 뒤 얼마 있으면 파리똥이 열매를 맺는다. 종이로 만든 파리 화장실을 태워 버렸는데, 초하가 되면 나무로 된 파리똥이 열매를 맺는다. 부드럽고 먹음직스런 열매에 파리가 응가를 한 것이다. 빨갛게 익은 열매는 만지면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탐스럽다. 마치 작년 겨울 방안에서 파리 화장실에 붙어 있던 까만 점만큼이나 많은 점들이 박힌 열매다. 껍질에 묻어 있는 점을 없애려고 손톱으로 긁어보아도 점은 벗겨지지 않고 결국은 껍질이 터지고 마는 그런 열매였다. 보릿고개를 맞은 파리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날았다가 왔다갔다는 증거로 실례를 하고 달아난 열매가 바로 이게 아닌가 모르겠다.

 

파리똥은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내는 열매다. 이름이야 생김새를 따라 붙였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다하더라도 맛은 일품이다. 보릿고개가 높아만 보일 때 입맛을 달래주던 간식이다. 아직 덜 익은 보리밭 언덕에 서 있기도 하고, 우물가 모퉁이에 있기도 하였던 나무다.

한 움큼 따서 먹으면 입안이 텁텁해지고 껄끄러워진다. 마치 땡감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메말라진다. 그것은 아마도 파리똥이 가진 열매의 성분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파리똥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본다. 잘 익은 열매는 보기에도 탐스럽고 먹기에도 좋아 보인다. 서너 개를 따서 한꺼번에 털어 넣는다. 오물오물하여 씹는 둥 마는 둥 하여 씨를 뱉는다. 입안이 알싸해진다. 그래도 또 한입 가득 또 따 먹는다. 급기야 입안이 얼얼해진다. 아니 파리똥이 이렇게 맛있는 거라면 이름을 좀 고쳐 불러야 할 것 같다. 혹시 파리 잼이나 파리 전이라고 하면 되려나 모르겠다. 생긴 것만큼이나 우아하게 불러야 제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