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교회에서 떡 먹는 우리들의 천국

꿈꾸는 세상살이 2007. 6. 16. 14:16

교회에서 떡먹기

 

교인이 100여 명도 채 안 되는 교회가 있다. 이는 시골교회로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있는 교회다. 인근 주민이야 모두 합해도 100여 명이 될까 말까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옆 마을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수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이 교회에서는 주일 점심때 교회에 온 신도들에게 점심밥을 제공하고 있다. 몇 명이 나왔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교인들이 와서 즐겁게 먹고, 담소하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시골교회답게 노인들이 많아 점심 식사 후에도 오후 시간 대부분을 보내기가 일쑤다. 그래도 같이 모여 먹고 지낸다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고, 기다려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긴 교회라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자나 선교사, 또는 목사를 위한 곳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떠나는 목자가 바로 진정한 목자니, 그 안에 있는 교인을 즐겁고 평화롭게 하며, 마음이 평온하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면서 살아서 천국을 맛보고, 죽어서는 천국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는 곳이라면 원래 취지에도 맞고 이론적으로도 아주 합당한 교회라 여겨진다.

따라서 그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아주 행복할 것이요, 그런 교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은 아주 훌륭한 목사님일 것이다. 나중에 상급을 받아도 그에 합당한 상급을 받을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주에는 교인들 대접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어머님 차례였다. 모든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드는 순서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 만들 재료를 사는 비용을 교회에서 지불하지 않는 것이며, 음식을 조리하는 것도 교회의 주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음식은 준비하는 각 개인이 메뉴를 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요리라는 것은 그에 맞는 대금을 지급하면 해결되는데, 이 경우는 원재료를 사다가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시골 노인이라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농촌에서 젊은이 구경하기가 어려운데, 노인들로서는 특별하게 시장을 봐야 하는 것이라든지, 시간 맞춰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노동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자리에 모여 마시고 먹으며 서로를 돕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그 이면에 숨어든 애로를 덮어버리기 쉽다. 실제로 어머님도 이번 음식을 준비하는데 적잖은 부담을 느낀 게 사실이다. 원래 음식 만들고 준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시지만 갈수록 한계를 느끼고 있다. 다른 분들도 음식을 준비하는데 타인의 힘을 빌리고 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준비한 것보다 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기왕에 준비하려면 넉넉하고 맛도 좋게 하여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 연령적으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반면, 갈수록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이번 음식 대접에서 어머님이 준비하신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우선 김치를 새로 담아 묵은 김치가 아닌 생김치로 하였다. 시골 분들이 즐겨먹는 잡채를 준비하였고, 호박을 썰어 말린 호박고지 나물도 하였다. 밭에 있는 파를 다듬어 파김치도 만들었고, 오징어를 채 썬 것을 볶았다. 일반 음료수도 구입하였지만, 대부분 인스턴트를 좋아하지 않아 식혜를 끓였다. 동태보다는 생태가 더 신선할 것 같아 생태탕을 끓였다. 봄에 뜯어다 놓았던 쑥을 넣고 찰떡 인절미도 만들었다. 후식으로는 커다란 수박도 샀다. 그 외에도 깻잎이며 콩 등 기본적인 밑반찬은 더 내야 하였고, 밥도 80인 분을 하였다. 지난번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 가장 크게 준비하는 음식이었다. 그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은 식구 중에서 어머니 혼자였지만 정말 대단한 잔치였다.

 

아무리 흉허물 없는 사이라지만 음식이라는 것이 먹다가 모자라면 그같이 낭패인 것도 없다. 따라서 적어도 푸짐할 정도로 하자니 역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어머니도 혼자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로 사는 딸이 두 명이나 출장 와서 도와주었고, 며느리가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가까운 친척이 없는 노인들은 아마도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미리 지치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느 누가 베풀고 서로 나누어 먹자던 후한 인심이었지만, 이제는 사역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정도가 되고 말았다. 한국음식이 원래부터 일손이 많이 잡히는 것에다가,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여져서 한두 가지 반찬으로 같이 먹자던 것이 변질되고 만 것이다. 혹 당신의 천국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교회는 그래도 아직까지는 시골인심이 남아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한 인심을 나눌 사람이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남을 먹이는 것은 좋은 시작이요 베품이지만, 행하는 내가 부담스럽다면 이는 곧 행하지 않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수록 고령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이 제도를 계속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한 가지 더 고려한다면 갈수록 잔치상 차리기로 경쟁이 되다시피한 음식 준비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적절한 시기에 잘라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사역자 즉 길 잃은 양들에게는 안전한 곳으로 인도 할 수 있는 현명한 목동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는 현상일 것이다.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 사각 쟁반에는 벌써 한 판의 떡이 있고, 이것이 두 번째 판이다.

먼저 떡판(= 암반)위에 떡 고물(콩가루)을 고루 폈다.

 

떡집에서 해온 떡버무리를 암반에 올려놓는다.

 

떡을 고루 펴고 그 위에 다시 떡고물을 얹는다.

 

떡을 고루 펴지도록 잘 주무른다.

 

적당한 두께와 넓이가 되면 가로 세로로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잘라진 인절미는 떡고물을 잘 묻혀서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고 네모가 나오도록 손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