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위봉아 잘 있거라

꿈꾸는 세상살이 2007. 7. 9. 12:02

위봉아 잘 있거라

 

위봉산에 가보았다. 벌써 몇 차례나 가본 곳이지만 오늘은 혹시 하면서 재촉하였다. 추줄산이라고도 불리는 위봉산은 예전에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던 산이었다고 한다. 그런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을 가를 때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구분하는 경계도 되었었다. 그런 중에 얼마 전 텔레비전 방송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이 사냥을 나와 담판을 짓던 모습이 살갑기마저 하다.

 

위봉산은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높이 524미터의 낮은 산이다. 뒤로는 진안군 동상면 수만리에 걸쳐있는데, 여기는 헝클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한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다. 그렇다고 산의 정상에 올라서 대자연을 즐기는 것도 아니며, 울창한 산세가 좋아 호연지기를 다듬는 그런 곳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어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나무도 보는 그런 산이다.

 

위봉산에 올라보면 중턱에 산성이 있는데 그것이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17호인 위봉산성이다. 산이 낮고 오르기 편하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아니다. 그늘이 필요하고 물이 필요한 지금 같은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몰려 올 뿐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등산을 하거나 산성에 올라 옛 선인들의 생활상을 더듬는 것은 아니다. 시원한 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계곡에 있는 그늘에 앉아 더위 �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슬픈 사연은 숙종 1년 1675년에 길이 16km로 둘려진 이 산성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보관하기 위하여 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상시 보관도 아니고 경기전에 있던 초상화를 유사시에 옮겨 보관하기 위한 공사였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백성들의 안위를 고려한 것도 아니고, 식량을 보관하거나 옮기는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왕족정치의 위엄을 실감나게 한다.

 

헐벗고 배고파하는 민초들이 더러는 다리를 동여맨 채로, 더러는 피멍들고 상처투성이인 채로 왔다갔다하며 어른거린다. 안쓰러운 마음에 흔적을 더듬는다. 인가가 있는 남쪽을 내려다보니 개천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민가가 있고, 개울 건너편에는 커다란 집이 있다. 송광사다.

 

이 절은 위봉산과 마주보고 있는 종남산의 발 뿌리에 있는 절인데, 신라 경문왕때 도의선사가 건축하였다는 설이 있다. 당시에는 절을 알리는 일주문이 3km밖에 위치하였다고 하니 가히 이 절의 위세를 짐작 할만하다. 여기에서도 시주를 하고 부역에 나섰을 양민들은 이제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을 등진 것이 역력하다.

대웅전 안에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국가의 환란 때에 땀을 흘린다는 설이 있는데,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에 많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사찰을 광해군 14년 1622년에 재건하기 시작하여, 인조 14년 1636년에 완성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때 많이 축소되었다. 그래도 국보급 보물 제1243호 대웅전, 1244호 종루, 1255호 소조사천왕상, 1274호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눈을 돌려 북쪽을 향하면 등성이 너머에 위봉사가 있다. 마치 위봉산의 수호신은 자신이라는 듯 앉아 있는 위봉사다. 계속하여 내리막길을 따라 가다보면 위봉터널이 나오고 바로 그 오른쪽에 위봉폭포가 있다.

 

오늘은 드디어 위봉폭포를 보았다. 안개에 싸여 모습을 감추는 곳도 아니고, 산신령이 노하여 병풍을 둘러놓은 곳도 아니건만 처음으로 만나보는 폭포다. 며칠 전 내린 듯 만 듯한 비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한 줄기 물기둥을 만들어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가물면 그냥 낭떠러지가 되고, 비가 오면 사방의 물을 끌어 모아 줄을 세우는 곳이다.

6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가늘지만 그래도 제법 폭포다운 면을 보여준다. 높은 산에서 모여진 물이 산 중턱에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산의 꼭대기에서 옹달샘처럼 솟아나 골짜기로 흐르는 듯한 폭포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며 아쉬워하는 줄을 아는지 하늘이 잔뜩 찌푸려있다. 굵은 빗방울도 하나 둘 떨어진다.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포도 알을 따는 손놀림 같다. 줄을 지어 바라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시샘이라도 하는 듯 저편 골짜기 건너로 불어오던 바람은 그 비구름마저 안고 돌아서 버린다. 마치 남강의 논개인양.

 

오늘은 위봉산의 모든 것을 보았다. 입구의 송광사에서 시작하여 산허리를 묶고 있는 산성과, 골 안에 있는 산사의 모습도 보았다. 거기에는 시끌벅적 생존을 책임져주는 식당들이 있는가하면, 너무 먹어 좀 줄여보겠다는 단식원도 있었다. 옛것은 좋은 것이라고 무더니 고집피우다가 뜨거운 열기와 검은 연기가 싫어 찻집으로 진화한 가마굴, 게다가 신령타 못해 신비스러운 위봉폭포까지 보았다.

 

이제 위봉의 전부를 보았으니 더 이상 바랄게 무언가. 혹시 팽이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 없는 위봉은 내가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까지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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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문화재청에서

송광사 대웅전

 

송광사 종루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송광사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사진은 완주군청문화관광과

위봉사 보광명전

 

위봉사의 가을 풍경

 

 위봉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