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어제 우체국에 들렀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 책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버려진 종이 상자를 찾아서 크기에 맞춰 자르고, 접혀진 곳은 바로 펴서 예쁘게 포장을 하였다. 혹시 운반 도중에 상자가 터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투명 테이프로 몇 번씩이나 정성스럽게 싸매주었다.
일부러 우체국에 들를 것인가 아니면 일반 택배회사를 불러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였으나, 마침 밖에 외출할 일이 있어 우체국 소포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우체국의 경우 택배로 보내려 하면 출장비를 받기 때문에 내가 방문하여 보내는 편이 경제적이다. 그러나 일반 택배회사의 택배는 별도의 출장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어느 모로 보나 우체국보다는 이익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물품을 보내는 운임도 우체국보다는 택배전문 회사가 저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일반 우편물로 인하여 집배원이 수고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우호적인 감정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서도 물품 발송에 대한 운임문제에 부딪히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제도 일부러 우체국에 들러 짐꾸러미를 내밀었다.
‘택배로 보내려고 하는데요.’
‘택배요?’
‘예, 택배요. 아니 소포로요.’
‘택배가 소포고 소포가 택배예요.’
나는 지금까지 소포와 택배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소포는 우리가 보통 발송하는 우편물인데, 부피나 무게가 조금 더 나가서 별도의 요금체계를 가지고 다루는 우편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택배는 일반 택배회사와 경쟁을 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로 발송할 때는 경우에 따라 출장비를 받고 방문하여 수거하기도 하고, 운송비용에 출장비를 더하여 배달해주는 제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부피가 커서 내가 들고 가기 불편한 물품을 우체국 택배로 발송한 적이 있었는데, 운임은 얼마고 출장비는 1,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좀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요? 나는 다른 것인줄 알았는데.’
‘여기에 주소랑 쓰세요.’
‘주소랑 전화번호랑 다 썼는데요?’
‘받는 사람 주소와 보내는 사람 주소가 서로 바뀌어 써 있잖아요.’
‘수신 누구누구 발신 누구누구 라고 썼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안돼요. 받는 사람의 주소가 위쪽에 써 있어야 돼요.’
‘택밴데 꼭 그렇게 해야 돼요?’
‘그럼요.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거든요.’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요즘 장마철이라 배달 중에 혹시 비에 젖을까 염려되어 일부러 매직을 찾아 또박또박 써 두었던 주소를 버려두고, 직원이 내미는 종이에 볼펜으로 써 넣어야만 했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잠시나마 머쓱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슬며시 농담을 걸었다.
‘근데 여기 우체국 택배는 좀 비싸지요?’
‘예?’
‘사실 보통 택배회사들 운임하고 비교해서 우체국 택배가 많이 비싸다고요.’
‘우체국 택배가 비싸요?’
나는 이제 분위기도 반전시키고, 요금이 비싼 줄 알면서도 굳이 우체국을 애용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그럼요. 우체국 택배가 훨씬 비싸지요.’
‘그러면 알아서 하세요.’
‘예?’
‘그러면 손님이 알아서 하시라고요. 그렇다고 요금을 깎아드릴 수도 없으니 손님이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알아서 판단하시라고요.’
모든 말은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고, 배운 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내 귀에 들리는 음성은 가히 도전적이었다. 짐을 들고 여기까지 찾아 온 내가 다른 데로 갈 의향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속을 보여주면서까지 애교나 아양을 떨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부치시죠, 우리 우체국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배달해 드리니 그렇게 알고 부치시죠, 하는 정도의 말이면 충분하였다. 또 말이 말이지만 다른 택배회사는 신속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게 배달한 다는 것도 아니니, 사실은 우체국의 경쟁력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정말 대답하기 싫은 상황에 처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만 두라고 하고 싶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우체국의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헌 신짝 버리듯 할 수가 없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대답하는 것도 그렇지만 야몰차게 쏘아 부칠 수도 없어 순간 갈등이 일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어 결국은 어정쩡한 답을 하고 말았다.
‘알았어요. 그냥 보내 주세요.’
사실은 책을 포장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이정도 무게에 이런 부피라면 회사의 고정 거래처 택배는 4,000원이면 충분하다. 기본이 5,000원이라고 하지만 경쟁관계로 중량이나 배달지역 등에 따라 할인이 정상가로 되어버렸다. 그런데 시내에서 시내로 배달하는 경우는 말만 잘하면 3,000원에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게를 재어보더니 5.6kg이란다. 그런데 일반 국판 책을 포장한 것이니 자그맣고, 더구나 A4종이 납품용 상자로 포장하였으니 겉으로 다 나타나는 것인데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본다. 그리고 서랍에서 작고 앙증스런 자를 꺼내어 가로 세로를 재고 높이를 재어본다.
‘5,500원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온 요금에 또 한 번 실망이다.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다면 그냥 택배회사를 부를 것인데 하는 후회도 든다.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도 아니건만 나도 모르게 다시 물어보았다.
‘5,500원요?’
‘예.’
이제는 할 말이 없었다. 물건도 주고받았고, 요금도 주고받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언제 도착할거냐, 잘 배달해 달라는 둥 창구 직원과 전혀 상관없는 농담을 해 보았겠지만 오늘 기분은 영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우체국은 변해도 많이 변해서 정이 가는 곳이었다. 내가 아는 남자직원은 현재 나이 40인데 나처럼 50이 넘을 때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던데, 오늘은 다른 나라의 우체국을 본 듯하였다. 며칠 전 가장이라는 이름하에 속으로 울다가 결국 겉으로 울고 말았던 일이 떠올랐다.
다시 들여다보는 전산으로 발급된 택배발송 영수증에는 중량의 기록이 없었다. 그리고 물품의 크기를 알리는 기록도 없었다. 발송일은 있으나 배달 예정이라거나 도착 예정일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편물 송달기준 적용곤란지역은 예정된 배달일보다 더 소요될 수 있다는 문구는 있었다. 나중에 분쟁의 소지를 없애려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2006년도 택배부문 고객만족도 4년 연속 1위 수상! 이라는 문구는 적혀 있었다.
오늘따라 내 모습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보였다. A4용지의 크기를 알고 있는 나, 접이식 자전거 한 대의 택배 요금이 4,000원 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 동일 우편물이 기준이상 다량일 때는 한 편의 우편물이 무료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 도서 출판의 경우 100편 이상의 발송의 경우 특별 할인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 전국의 시군이 어느 도에 있고 어느 시군이 배달지연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거기에는 필요하면 찾아오고, 찾아오면 응대하는 손님과 창구 직원 외에 아무 관계도 없었다.
역시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창구 여직원이 오늘따라 존경스럽고 부러워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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