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아이들

부엌칼로 케이크를 자르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12. 7. 10:59
 

부엌칼로 생일 케이크를 자르다.

오늘은 음력으로 10월28일인데 달력에는 대설이라고 적혀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아침 뉴스가 있었고, 남부지역도 아침 7시까지 밖이 어둡고 우중충하였다. 그래도 오늘이 내 생일날임은 틀림이 없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든 안 불든 상관도 없다.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생일은 변함이 없는 것처럼, 나도 단 하나뿐인 귀한 몸인데 실제로는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공기나 물처럼 귀한 줄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보다.

오늘 아침에 생일 케이크를 잘랐다. 예전에는 제과점에서 사온 둥글고 폼 나는 케이크를 사용하였었다. 달콤한 크림과 부드러운 속살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둥글고 커다란 식빵을 사다가 케이크를 대신하였다. 예전보다 딱딱하고 거칠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설탕 덩어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위로가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았다. 식구도 겨우 세 명이지만 노래도 부르고 촛불을 끄면 다음은 케이크 절단 순서였다. 플라스틱 칼은 가냘프고 힘이 없어 톱인지 칼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었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빵 케이크도 부드럽고 살살 녹는 달콤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생일 케이크에 네모난 식빵을 사용하게 되었다. 밀가루로 만든 것보다는 그래도 옥수수 식빵이 나을 것 같아 고르고 고른 것이다. 식빵을 넓게 편 위에 집에서 만든 잼을 얹고 다시 식빵을 포개서 층을 이루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크기로 만들 수도 있고, 잼을 먹고 싶은 만큼 넣는 것도 좋았었다. 거기다가 향긋한 허브나, 영양을 생각하여 깻잎과 같은 야채를 넣을 수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거야말로 내 생일에는 순전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유일무이한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듯하였다. 그래도 빵이 수입 밀가루로 만들어졌고, 잼에 설탕이 들어있다는 것은 잘 먹고 난 뒷맛에 미련이 남게 하였다.

어제 저녁에는 떡 케이크를 만들었다. 생일에 시루떡을 쪄 먹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케이크대신 준비하기는 처음이었다. 찹쌀가루를 뿌리고 그 위에 팥을 얹은 뒤 다시 쌀가루를 뿌리는 방식으로 층을 이루었다. 메떡도 아닌 찹쌀떡을 시루에 찌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내는 정성으로 떡을 쪄냈다. 딸아이는 맨 위에 축생일이라는 단어도 써 놓았다.

오늘 아침 케이크에 초 7개를 꽂았다. 큰 것 두개와 작은 것 다섯 개였다. 내 나이와는 맞지 않았지만 그냥 집에 있는 것을 찾아서 꽂은 것이다. 내 나이만큼 지내온 세월을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하였다. 초가 자신을 녹여 주위를 밝히는 희생정신을 가졌다면, 나도 지금까지 희생해 온 것을 생일에 축하해 준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생각으로 위로해 보았다.

찹쌀 팥 시루떡은 플라스틱 칼로 자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늘 생일케이크는 처음부터 쇠칼로 잘랐다. 잘 익은 찰떡은 칼질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른 부위를 또 자르고 잘라야 떼어낼 수 있었다.

떡이 차진 만큼이나 아내의 정성이 녹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밥과 떡을 번갈아 먹으면서 나 혼자가 아님을 실감하였다. 나는 가족들에게도 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나는 가족들에게 귀하 존재의 역할을 다 하고 있지 못하지만 말이다.

'내 것들 > 아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래미  (0) 2010.04.19
경차가 가진 또 다른 의미  (0) 2009.05.22
한 달에 세 번 준비하는 생일  (0) 2007.06.17
지금은 작전중입니다.  (0) 2007.02.17
국도 7호선에서 있은 일  (0) 2007.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