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아이들

국도 7호선에서 있은 일

꿈꾸는 세상살이 2007. 2. 14. 08:42

2007년 1월 트럭이 굴렀다.

 

이른 아침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는 이미 밝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침 7시. 이제 막 언덕에서 내려오는 한 대의 트럭이 보인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려가는 위세는 등등하다. 고요한 아침 파도소리와 맞서 대적할 것은 이 소리뿐이다. 매일 아침 시간을 정해놓고 지나는 트럭이지만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트럭은 채소나 감자상자 그리고 된장통도 싣고 다니지만 어떤 때는 사람이 타기도 하였다.

언덕길은 추락방지용 방호벽이나 자연석들이 늘어서 있으며, 수십 길 낭떠러지로 아찔한 곳도 많이 있다. 언덕을 내려오면 그 다음은 왼쪽으로 돌아야하는 구부러진 길이다. 빠르지도 않게 서서히 달리던 트럭이 굽어진 도로 마지막 부분에서 모래사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방호벽도 인공방파제도 없는 좁은 공간이 있는 곳이다.

트럭은 잘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멈춰 섰다. 해수욕장의 방파제는 낯선 사실을 가려주고 트럭의 지붕만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반평생을 이 바다에서 살아왔지만, 트럭이 모래를 푸기 위하여 해수욕장으로 들어 간 것은 처음 일이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그것도 일이라고 해뜨기 전에 밥도 안 먹고 해야 한단 말인가. 방파제에 올라보니 트럭은 해수욕장의 가운데쯤 서 있었다. 백사장의 폭이 좁은데다 이제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니 그마저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트럭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고, 신고 있는 구두 속에 모래가 들어와 발이 아프다. 그대로는 더 이상 뛸 수가 없다. 트럭 주위에는 군인들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 트럭에 지난번처럼 배추나 무를 가득 싣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군에 간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찾아도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또 한 바퀴를 돌아도 찾을 수 없었다. 엎드려있는 병사들 하나하나를 뒤집어 보고, 트럭 밑바닥을 기어도 보았다. 부릅뜬 눈에는 핏발이 섰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웃옷이 벗어지는 것도 모르고 허둥대었다. 그래도 내가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헤맸는지도 모르는데 온 몸에 찬 기운이 스며든다. 병사들의 신음소리 가운데서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군에 간다고 열차 안에서 손을 흔들던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쯤 저 산봉우리보다 더 높은 꼭대기에서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을 아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세상의 모든 찬바람이 오로지 그곳을 향하여 불어간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난데없는 아들은 왜 여기서 찾고 있단 말인가.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을 닦고 보니 세상이 다시 보인다. 다행히 모래밭에 떨어진 군인들은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하다. 운전석과 그 옆에 탄 사람도 그대로 앉아있었다.  트럭이 제대로 서 있기는 하지만 두 바퀴나 굴렀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깨운다.

“이봐! 이봐! 얼른 일어나! 대장이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정신을 잃고 있었던 선탑자는 평상시 부하들을 잘 위해준다고 소문난 바로 그 사람이었다. 무슨 일만 있으면 할 수 있을 때 잘하라고 타이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잘 따르고 좋아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자네가 착하니까 복 받은 거야. 빨리 나와 봐. 모두들 자네만 기다리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