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아이들

한 달에 세 번 준비하는 생일

꿈꾸는 세상살이 2007. 6. 17. 22:26

한 달에 세 번이나 준비하는 생일

 

오늘이 바로 아들녀석의 생일이다. 양력으로는 6월12일인데 화요일이었고, 음력으로는 5월2일로 오늘이다. 양력과 음력으로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흔치 않는 일인데 어�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아들은 군에 가서 집에 없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에 휴가를 얻어 집으로 온다고 하길래 잘하면 양력 생일을 집에서 지낼 수 있을 거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주일 연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길지도 않은 3박4일 휴가를 내면서 그런 날짜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짜를 받아 놓았으나 갑자기 일이 생겼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행인 것이 이제부터 음력 생일을 챙기기로 하였는데 딱 맞춰  생일에 올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9년에 걸쳐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챙길 수 있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좋아하는 돼지고기도 사고, 생김치도 담그고, 고등어도 샀다. 마늘 고동으로 장아찌도 담고, 꽈리고추로 조림도 하였다. 표고버섯 말린 것을 삶아서 양념을 넣고 볶았으며, 손이 많이 가는 오이 소박이도 하였다. 과일은 토마토를 사고 커다란 수박도 하나 샀다.

또 군에서 고생한다고 삼계탕이라도 끓이려고 토종닭을 두 마리나 샀다. 나를 닮아서 전을 좋아한다고 맛살과 표고버섯, 그리고 고추를 넣은 꼬지도 하였다. 동생은 오빠 생일을 맞아 생크림 게이크도 하나 마련하였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면 만사 오케이가 될 판이었다.

 

아침 6시 50분. 아내는 주방에서 미역을 꺼내 손질하고 있는데 내가 전화를 해보았다. 언제 출발하여 언제 도착할지 궁금하였던 것이다. 집에 오는데 6시간이나 걸리니 지금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오고 있을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폼이 좀 어설프다. 아니다 다를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목소리인데 그나마 힘도 없다. 지금도 자고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스쳐간다. '어제 작전했니?' 여러말을 할 필요도  없이 상황이 직감되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휴가를 떠날 녀석이 지금도 자고 있다는 것은 전날 뭔가가 있었다는 것이니 더 물어서 무엇하리. '오늘 못 온다고?' '예, 일주일 연기됐어요.' 어제 잠을 못 잤어도 올려고만 하면 올 수도 있겠으나,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훈련이 시작된단다. 또 다시 일주일이 연기된 것이다.

 

애 엄마는 괜히 화부터 낸다. 그럼 진작 말을 할 것이지 오늘 휴가 온다고 하여 준비한 것이 다 허사가 되니 어떡하란 말이냐고 부리는 투정이다. 일주일 후에 생일상을 또 차려야 한다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렇게 물으면 자신인들 늦게 오고 싶을 것인가. 이렇게 되면 또 다시 내가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다들 싫어하는 군대를 나만 우겨서 보낸 것이 되니 일일이 대응하기가 만만치 않다. 차라리 눈에 잘 안보이는 방에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이제 10년째 생일을 못 챙겨준 역사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곁에 두고 못 챙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다. 지금까지 준비했던 모든 음식들을 사진을 찍어 놓고 증거로 제시하여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정말 그렇게라도 하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생일이 챙겨지는 것도 아닌데, 정말 그러면 괜히 부모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처럼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생일도 없는 아이가 될까 하는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내년에는 제때에 생일을 꼭 챙겨주기로 마음먹는다. 혹시 휴가를 못 낼 것 같으면 미리 찾아가는 생일이 되더라도, 제 날에 맞이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해본다. 다음 달이면 중대장의 보직을 맡게 된다던데 어디로 가든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